입법·행정·사법 강경보수 장악 이란..대외 정책 변하나
이스라엘·사우디와 대립 심화 가능성.."중국·러시아와 관계 강화"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19일(현지시간) 이란의 새 대통령으로 강경보수 성향 성직자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가 당선되면서 이란의 대외 정책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이란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놓고 미국 등 서방국과 줄다리기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란 체제상 국가 중요 안보·외교 사안에 대한 결정권은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란의 핵협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수 성향 의원들이 이란 의회를 장악한 상황에 더해 행정부 수반까지 강경파 인물로 선출되면서 향후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중동 지역 최대 적성국 이스라엘과, 예멘 내전의 대리 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 간 대립도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란 내부 "라이시는 현실적이고 실용적"…핵협상 중단 없을 것
이번 대선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위한 참가국 회담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가운데 치러졌다.
빈 회담에서 이란 대표단을 이끄는 압바스 아락치 외무부 차관은 최근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에서 라이시의 외교 전략과 관련해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묘사했다.
아락치 차관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라이시가 국제사회와 협력, 건설적인 경제 교류 등에 기반한 대외 정책 방향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핵협상과 관련해서도 그의 입장도 현실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외교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그가 당선되면 협상 과정에서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그간 핵합의 복원 협상은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알리 라비에이 정부 대변인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시스템과 정책의 틀 안에서 핵합의 복원 협상에 임할 것"이라면서 "이란은 최고지도자의 지침에 따라 협상한다"고 밝혔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헨리 롬 선임 연구원은 AP통신에 "핵합의 복원은 2015년 처음 체결할 때만큼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핵협상 복원 회담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해결해야 할 세부 사항이 많은 상황에서 이란은 우라늄 농축량을 늘리거나 더 많은 원심분리기를 설치하는 등 서방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를 더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 4월 초부터 빈에서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측과 만나 핵 합의 복원 문제를 협상 중이며, 미국과는 간접적으로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핵합의는 2015년 이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및 독일 등 6개국과 맺은 것으로, 이란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제재를 부활시키자 이란도 핵 활동을 일부 재개했다. 현재 미국은 이란이 합의를 준수할 경우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스라엘과 '강대강' 대치 지속…"이란의 친구는 중국·러시아뿐"
대선 과정에서 라이시의 주요 대외 정책 공약은 '제재 해제 보장', '우방국과 관계 강화'였다.
라이시는 대선 TV토론에서 개혁파 상대 후보 압돌나세르 헴마티를 향해 "핵합의 복원을 위해서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그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2015년 성사시킨 핵합의 내용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정부를 주창하는 라이시의 발언은 서방은 물론 중동 지역의 '적'들과 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얼마 전 강경파 나프탈리 베네트가 총리로 선출된 지역 최대 적성국 이스라엘과는 강대강 대치가 예상된다.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강경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은 8년 만이다.
2012년 강경파 아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재임 당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긴장이 고조됐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수교에 합의했을 때도 라이시는 비판의 날을 세웠었다.
당시 라이시는 레바논 헤즈볼라를 지지하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가 팔레스타인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라이시가 핵합의 복원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서방 국가 외교에 도전장을 던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동 안정 정책 목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중동 지역 내 무장 세력에 이란이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이런 문제에 관해 미국과 대화하기를 거부해왔으며 이런 경향은 라이시의 당선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WSJ는 덧붙였다.
CNN방송은 라이시가 국내적으로 반대 세력을 탄압할 것이며, 중요한 순간에 이란을 폐쇄적인 국가로 회귀시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문제 싱크탱크인 대서양위원회의 이란 전문가 홀리 다그레스는 "우리가 최근 사례에서 볼 수 있었던 것보다 이란은 훨씬 더 억압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국제 사회에서 이란의 친구는 중국과 러시아밖에 없다"면서 "이란은 북한과 같은 고립의 길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logo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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