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쓴맛을 대하는 자세 [박영순의 커피 언어]

이복진 2021. 6. 19. 19: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커피에 쓴맛은 계륵(鷄肋)과 같다.

고약한 쓴맛으로 인해 마시기 쉽지 않은 점은 커피에 되레 범접하기 힘든 고상함을 부여했다.

커피의 향미를 묘사하는 전문가들은 쓴맛에 대한 관능적 느낌을 묘사할 때 신중하다.

그럼에도 몸에 유익한 항산화물질들이 쓴맛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사실 좋은 커피는 쓴맛을 피해갈 수 없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잘 익은 커피체리만을 수확해야 단맛이 감도는 고급스러운 쓴맛을 지닌 좋은 커피가 될 수 있다
커피에 쓴맛은 계륵(鷄肋)과 같다. 없으면 달고 시기만 한 주스 취급을 받고, 많다 싶으면 품질이 좋지 않다는 비난을 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커피 역사에서 쓴맛은 커피를 문화적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게 한 일등공신이다.

1930년대 다방 문화가 한창 꽃피울 때 녹즙처럼 진한 커피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마실 줄 알아야 모던걸·모던보이로 대접받았다. 시쳇말로 ‘외국물을 좀 마셨다’고 하면 쓰디쓴 커피를 꾹 참아낼 줄 알아야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고로 커피라고 하면 써야 제맛’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형성됐으며, 쓴맛을 고독처럼 즐기는 게 ‘지식인의 미덕’인 양 통했다.

커피는 높은 지위 또는 지식인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됐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상류사회에서 커피문화가 형성된 뒤 차차 대중에게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1860년 철종 때 조선에서 활동한 베르뇌 신부가 인편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커피 생두 45㎏을 들여왔음을 보여주는 서신이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1863년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친모가 프랑스 신부를 운현궁으로 모셔 미사를 드렸다는 전언과 후일 고종이 경복궁을 찾은 외교관들에게 커피를 제공했다는 기록은 당시 커피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커피는 왕실이나 지식인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고급문화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항간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고약한 쓴맛으로 인해 마시기 쉽지 않은 점은 커피에 되레 범접하기 힘든 고상함을 부여했다.

커피의 향미를 묘사하는 전문가들은 쓴맛에 대한 관능적 느낌을 묘사할 때 신중하다. 일반적으로 쓰면 쓰고 달면 달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고급 커피에서 감지되는 쓴맛에는 대체로 ‘부드러운’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 쓰긴 하지만 마시기에 나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자 하는 것이다.

커피 향미를 표현할 때 번역하면 뉘앙스가 달라지거나 의미가 왜곡될 수 있어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비터스윗(bittersweet)’이다. 회화에서 ‘시원섭섭하다’로 활용되는 이 표현은 고급스러운 쓴맛을 나타내기도 한다. 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쓴맛을 애써 참고 먹어내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라는 말이 있다. 학습 덕분이다.

커피에서 쓴맛이 두드러지면 품질이 좋지 않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몸에 유익한 항산화물질들이 쓴맛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사실 좋은 커피는 쓴맛을 피해갈 수 없다. 쓴맛은 주변을 감싸는 단맛이 있어야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단맛이 없는 쓴맛은 지독한 자극일 뿐이다. 이를 참고 마시는 것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커피를 마실 때 쓴맛만 감지되면 뱉어야 한다. 그러나 단맛이 뒤를 받쳐주면서 다크초콜릿이나 자몽이 떠오른다면 삼킬 만한 가치가 있는 ‘비터스윗한 커피’이다. 독을 다스리는 자가 명의(名醫)이듯, 쓴맛을 대할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커피테이스터(coffee taster)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