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연기? 민주 경선 '그들만의 싸움'

반기웅 기자 2021. 6. 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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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짜 약 장수들이 기기묘묘한 묘기를 부리거나 평소 잘 못 보던 희귀한 동물들을 데려다가 가짜 약을 팔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그런 식으로 약을 팔 수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선연기론을 ‘가짜 약 팔이’에 빗대 한 말이다. 이 지사의 발언 이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 간 경선연기 물밑 신경전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광재·김두관 의원,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친문’계는 경선연기를 요구하는 반면 이재명 지사 측은 원칙론을 내세워 맞서고 있다. 민주당 초선의원들도 찬반 여론이 팽팽히 갈린다. 경선연기를 고리로 정면충돌할 조짐마저 보인다. 당 안팎에서는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5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 대선 출마 기자회견장에서 이낙연 전 대표(오른쪽)와 정세균 전 총리가 박수를 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경선연기 두고 정면충돌

경선연기론자들은 왜 경선을 미뤄야 한다고 말하나. 표면적인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경선 흥행과 코로나19다.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광재 의원은 “‘이기는 선거’를 하려면 경선 흥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선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흥행’을 강조한다. 최 지사는 지난 6월 7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난 당대표 선거 때 코로나19로 인원이 제한되다 보니 너무 재미가 없었다”며 “대선 경선은 7~8월 휴가철에 진행되기 때문에 더 재미가 없을 것이다. 연기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 지지모임 신복지포럼 소속 이병훈 의원도 SNS에 “이대로는 내년 대선결과도 비관적”이라며 “경선일정을 미루고 방식도 변경해야 한다”고 경선연기론에 힘을 실었다.

반면 경선연기 반대 측은 경선연기론이 오히려 대선 승리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본다. 이재명계 조직 ‘민주평화광장’ 공동대표인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6월 15일 페이스북에 “경선연기론은 근본적으로는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민심과 동떨어진 우리 내부의 소모적 논쟁”이라고 밝혔다. 조 의원은 최근 흥행에 성공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사례를 들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코로나19 집단면역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치른 선거인지 되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경선연기의 목적이 다른 후보의 지지율을 높여 이 지사의 독주를 막기 위한 시간 주기에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원칙론’을 내세워 경선연기론을 공격한다. 민주당 당헌은 ‘대통령선거일 전 180일까지’ 대선후보를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9월 초까지 대선후보를 선출하려면 6월부터는 경선 일정을 시작해야 한다. 원칙대로 경선을 치르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재보궐선거의 패배도 ‘원칙을 어기고 후보를 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재명계인 정성호 의원은 6월 15일 SNS에 “집권당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정파적·정략적 논란만 하는 것은 자멸의 길”이라고 썼다. 앞서 경선연기를 주장하는 정세균 전 총리는 “경선에 관한 규정은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다”라며 “필요하면 고칠 수 있도록 당헌당규에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선연기를 둘러싼 갈등은 민주당 대선 플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은 “경선 일정은 방송국으로 치면 편성표를 짜는 것”이라며 “황금시간대에 편성하자는 건데 정작 국민은 편성 시간대에 관심이 없다. 콘텐츠가 좋으면 시청자들은 다시보기로 본다. 지금 싸움은 눈앞 실리를 위한 내부 분열로 국민에게도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 의원들이 당의 쇄신 방향을 놓고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민주 경선 흥행 ‘빨간불’

민주당이 경선연기론에 매몰돼 있는 사이 국민의힘의 대선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8월에 대선 버스를 출발시키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말 7초’ 대선 출마 선언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국민의힘에 합류할 것으로 점쳐진다. 최재형 감사원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외부 인사 영입 가능성도 있어 경선 흥행 요건을 갖췄다는 평가다. 여기에 홍준표 의원의 복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합당 논의가 진행되면 경선 레이스는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국민의힘은 내부 인사뿐 아니라 무게감 있는 장외 인물들이 등판할 수 있다. 경선 흥행카드를 여러 개 쥔 셈”이라며 “민주당이 만약 경선연기를 택한다면 미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방법론을 제시하고 팬시한 정책을 내놓고 바람몰이를 할 필요가 있다. 준비 없는 경선연기는 재보궐선거를 재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도 경선연기 갈등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6월 16일 페이스북에 “때늦은 경선연기 이야기는 국민이 보기에는 그저 후보자들 사이의 유불리 논쟁에 불과하다”며 “경선연기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 경선 흥행에 신경써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초선의원들도 경선 방식 논의에 집중하자는 입장이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영인 의원은 지난 6월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경선 흥행이 중요하다”며 “경선 방식부터 먼저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제시한 경선 흥행 아이디어는 슈스케(슈퍼스타K) 방식의 오디션 경선이다. 대선경선기획단에 예능 PD 등 외부 인사를 포함시키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오디션 경선 ‘방식’이 곧장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조직위원장을 선발하기 위한 선발 공개 오디션을 벌였다. 15개 지역구, 36명이 슈스케 방식의 오디션에 참여했다. 당시 오디션은 유튜브와 당 홈페이지·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됐는데 흥행몰이에는 실패했다. 실시간 시청자는 1000명 안팎에 머물렀다. 당 공식 유튜브 구독자 4만2000명(2019년 1월 기준), 2%도 오디션을 시청하지 않았다. 하헌기 소장은 “예능적인 요소나 오디션은 내용을 담는 외피에 불과하다”며 “의제와 방향을 잡고 형식을 이야기해야 한다. 형식부터 이야기하면 그 형식으로 인한 ‘효과’ 논쟁밖에 못 한다”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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