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라..여자들이 치열하게 통과중인 '갱신기' 이야기를 합니다

한겨레 2021. 6. 19. 16: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요판] 기획
유튜버 된 방송인 최유라
유튜브 채널 '헤이 유라' 시작
갱년기는 자기를 갱신한다는 뜻
너무나 근사하고 멋진 일이잖아
방송인 최유라씨가 15일 오전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갱년기 여성을 위한 유튜브 제작을 하기 전 사진촬영을 위해 자세를 잡고 있다. 오른쪽은 반려묘 로리.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요즘 나의 부캐는 ‘피디(PD) 동생’이다. 유튜브 채널 ‘최유라의 헤이유라’의 제작자로 영상에도 종종 등장해, ‘피디 동생’으로 불리며 주인공 최유라의 스토리텔링을 돕는다. 중년에 유튜브 피디가 되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다. 오랜 시간 콘텐츠 다루는 일을 업으로 해왔지만 유튜브는 미지의 세계였다. 유튜브가 낯설기는 방송 경력 30년의 베테랑 진행자 최유라도 마찬가지. 구독료가 부과될까 두려워 구독 버튼 누르기도 주저하던 그였다. 최고의 라디오 진행자로 이름을 떨치며 문화방송(MBC) 골든마우스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10년 동안 티브이(TV) 홈쇼핑 진행자로 맹활약하고 있는 그이지만 불과 몇달 전까지는 철저한 ‘유알못’(유튜브를 알지 못함)이었던 것이다. 이랬던 두 갱년기 여성이 올 초부터 유튜브의 매력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매주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수시로 시청자 댓글을 확인하며 만나기만 하면 무슨 영상을 찍을까 고민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갱년기, 리셋하는 시기라고 재정의했어

―‘헤이유라’가 중년 여성들의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든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할 따름이야.

“헤이유라를 시작하면서 너한테 여러차례 질문했잖아. ‘특별한 게 별로 없는데 이런 이야기가 콘텐츠가 되는 거니?’라고. 솔직히 ‘콘텐츠’니 ‘소통’이니 하는 단어는 아직까지 어색해. 그냥 사람 사는 얘기인데 무언가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지. 나는 그저 내가 치열하게 통과 중인 갱년기 경험을 나누는 것뿐이야. 다만 나이 들며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스스로도 한번쯤 정리하고는 싶었어. 나 또한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니까. 막연하게나마 이 시기를 잘 갈무리해야 남은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정리의 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일 수도 있었겠지만 유튜브라는 매체를 선택한 것은 잘한 결정인 듯해. 영상을 올릴 때마다 들리는 사람들 목소리, 줄줄이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니까.”

―언니 말처럼 갱년기는 인생에 한번은 겪게 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단계인데 희화화되는 것이 안타까웠어. 변덕이 심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여자들을 향해 무조건 “갱년기야?” “갱년기라서 저래!”라고 치부한다거나 가벼운 개그 소재로 다뤄지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우리 첫 영상의 제목을 “나는 갱년기다”라고 붙였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야. 유명인 최유라의 당당한 ‘갱밍아웃’에서 묘한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좋겠다 하고 말이지.

“너는 알겠지만 원래 내가 좀 고지식하고 학구적인 면이 좀 있잖아. (맞아 맞아. 보기보다 성실하고 은근히 에프엠(FM)이지!) 언젠가 갱년기를 왜 갱년기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어. 갱년기에 대한 정보는 많지만 그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나? 문득 의문이 들었거든.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해결책이 생기든 말든 할 것 아니야. 그래서 찾아봤더니 갱년기(更年期)에서 이 ‘갱’(更)이라는 한자가 ‘고칠 갱’과 ‘다시 경’ 두가지로 읽히더라고. 그 뜻도 ‘바뀌고, 새로워지고, 고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결국 갱년기란 우리 인생을 다시 새롭게 바꾸는 시기, 즉 경년기라 불러도 좋을 거야. 유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를 지나 노년기로 접어드는 길목에 위치한 갱년기이자 경년기!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며 현재의 나를 최상의 상태로 리셋하는 시기라고 재정의하고 나니까, 아 글쎄, 할 일이 갑자기 너무 많아지는 거야. 무언가 소멸하고 쇠락하며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국면의 나를 만드는 시작점이라니. 너무 근사하잖아!”

방송인 최유라씨가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헤이 유라’ 유튜브 영상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방송인 최유라씨가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헤이 유라’ 유튜브 영상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구독자 댓글 거의 에세이 수준
일상에서 사투하는 오롯한 흔적
도전했다는 이야기들 동기부여 돼

거대한 물결도 작은 변화에서 시작해

―처음 헤이유라를 기획하며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는데 의사들의 조언이 담긴 의학정보가 거의 대부분이어서 의아했어.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자신을 사랑하세요” “당신은 소중해요”라는 식의 듣기 좋은 아포리즘이 많았지만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어. 언니를 옆에서 지켜보니 이미 갱년기를 마스터한 전문가더라고. 갱년기 처방으로 ‘손 닿는 곳에 작고 예쁜 선풍기를 두라’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

“내가 매일 들고 사는 선풍기 얘기를 하자고 해서 당황했었어. 아니, 수시로 화끈거리는 갱년기들에게 선풍기는 너무 당연한데 말이야. 뭐 그럼에도 나만의 팁이 있다면 작은 선풍기 여러개를 동선 곳곳에 빈틈없이 배치한다는 점이야. 그것도 반드시 아주 예쁘고 보기 좋은 디자인으로. 열나는 것도 억울하고 화나는데 내 앞에 있는 선풍기까지 우울해서야 쓰겠니? 땀이 나면 더운 게 아니라 슬퍼지는 게 갱년기거든. 그러니 슬퍼지려 하기 전에! 미리미리 조치를 취하고 슬플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게 나의 지론이야. 거스러미가 일어난 손톱이나 양말에 걸리는 각질도 마찬가지야. 젊었을 때는 문젯거리도 되지 않던 사소한 몸의 변화가 어느 한 순간 자신을 가라앉게 만들거든. 노화는 막을 수 없어도 노화를 잘 달래서 함께 가는 법이라고 할까? 나는 갱년기란 안 하던 짓을 하는 시기라고 규정했어. ‘에잇, 젊을 때도 안 했는데 뭘 이제 와서…’ ‘아니요! 젊었을 때 안 했으니 이제부터 하세요!’라는 말은 내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그래서 우리 든든이들(헤이유라 구독자 애칭)이 이른바 ‘안 하던 짓 도전기’들을 많이 들려주시잖아. 또 거의 모든 댓글에 언니가 일일이 답글을 다는 바람에 헤이유라가 ‘답글 맛집’으로 소문난 거 알지?

“진짜 우리 든든이들 댓글은 거의 에세이 수준 아니니? 진짜 사연 없는 집이 없는 것 같아. ‘유라씨, 나도 배달 앱 깔고 아들 도움 없이 배달 음식 주문하려고요. 이제 삼시 세끼 밥 차리는 것 대신 종종 배달 음식도 시켜 먹을 거예요.’ ‘행주, 걸레 살살 쥐어짜고 무거운 물건 함부로 들지 말라는 언니 말이 왜 그렇게 위안이 되는지요.’ ‘입 밖으로 말 안 하면 내가 왜 그러는지 절대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늘 큰소리 한번 쳤네요. 제대로 버럭 하고 났더니 퉁퉁 부었던 마음의 부기가 훅 하고 빠진 것 같아요’ 같은 말들. 각자 사는 곳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겠지만 자신들의 일상에서 나름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흔적이 오롯이 느껴져서 뭉클할 때가 많아. 멀리하던 네일숍에 가고 안 먹던 영양제 챙겨 먹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 내 얘기는 그냥 하나의 예제일 뿐이야. 다만 작고 사소한 시도가 다른 큰 변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다고 믿어. 거대한 사건도 원래 트리거(Trigger) 혹은 단초는 아주 보잘것없는 경우가 많잖아. 나비효과처럼 말이지. 우리 영상을 보고 무언가 새롭게 시도했다는 고백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동기부여로 작용해.”

―우리가 2월4일 첫 업로드 개시 후 지금까지 총 25개의 영상을 만들었어. 갱년기 주제를 비롯하여 최유라의 관점이 담긴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소개했는데 언니한테 제일 기억에 남는 영상은 무엇이야?

“사실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다이어트와 운동화편이 아닐까? 피디 동생은 어때? 조회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자부해?”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놈 없다는 말! 여기도 해당되겠네. 한편 한편 나름대로 다 영혼을 갈아 넣어서 그런지 다 눈에 밟혀. 그러나 솔직히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했단 의미라고 해석해도 되겠지?(웃음)

“그러니까 피디 동생도 조회수지상주의란 거잖아!(웃음) 다이어트편은 촬영하면서도 내가 진짜 다이어트를 갖고 떠들어도 되나? 반신반의했어. “44, 55도 아닌 내가 다이어트를?” 그런데 다이어트 비법이나 노하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어트에 대한 나의 철학, 특히 중년의 다이어트는 달라져야 함을 몸소 체득하고 있는 중이라 필요한 주제라는 확신이 뒤늦게 들었어. 날씬한 보디라인, 화려한 복근 하나 안 보여주고도 얼마든지 설득력 있게 얘기할 수 있었잖아. 뭐 물론 개중에는 ‘진짜 다이어트 한 거 맞나요?’ ‘살 좀 더 빼시라!’는 댓글도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아.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나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몸 만들기를 하는 중이고 그 선택은 내 자유지. 어찌되었든 다이어트를 논할 자격이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피력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어. 이런 의도를 간파해주는 시청자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 성공!”

‘헤이 유라’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헤이유라’를 제작하는 ‘피디 동생’ 김정선(왼쪽) 컨텐츠그룹담 대표와 최유라씨. 컨텐츠그룹 담 제공

가족관계 조율하려는 강박 힘들어
세상 중심을 ‘나’로 리셋해봤어
의도 알아주는 시청자들 손잡고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 하고 싶어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도 되었지

―운동화편 역시 관심이 뜨거웠는데 유사한 콘텐츠와는 달리 운동화를 패션으로 풀지 않고 언니의 족저근막염 경험담으로 시작한 것이 신선했어. 난 또 세상에 족저근막염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네.

“발도 늙기 때문이야. 우리 나이가 그렇잖아. 평생 온몸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았는데 탈이 날 만도 하지. 그런데 발이 아프다고 못생긴 신발 신으라는 법이 어디 있어! 어쩔 수 없이 신어야 할 운동화라면 예쁜 것을 신자. 절대 스타일도 포기하지 말고. 특히 부모님 사드린다고 하는 자녀들이 폭풍 질문을 했는데 내가 모델명에 구매한 사이트 정보까지 일일이 애프터서비스 하느라 한동안 바빴잖아.”

―얼마 전 자신을 ‘새댁 든든이’라고 밝히는 30대 초반 구독자를 만났는데 헤이유라 채널을 즐겨 본다는 거야. 친구들과 종종 갱년기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친정 엄마들 때문이래. 갱년기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가 왜 그럴까?”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했대요. 영양제 사드리는 것 말고는 해드릴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하면서 말이지.

“아주 기특한 딸들이네. 그런데 그 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옆에서 해줄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아.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결국 열쇠는 본인이 쥐고 있을 테니까.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핵심이야. 나도 예전과 달라진 것이, 남편이고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이제 참지 않고 해. 그게 조곤조곤 대화가 됐든 버럭 소리 한번 지르는 것이든 반드시 표현을 해. 돌이켜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중간에서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리저리 조율하느라 힘겨웠거든. 괜히 가운데 끼여서 답답하고 억울할 때도 많았고. 그런데 그러다 골병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야. 세상의 중심을 나로 리셋하게 된 것도 갱년기를 겪으며 달라진 점일 거야.”

―언니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어?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어. 색다른 도전을 즐기며 다채로운 계층과 소통하려고 해.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아도 괜찮아. 처음부터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모두를 만족시키려 애쓰는 것처럼 허망한 일은 또 없지. 그 대신 나랑 같이 놀아주는 사람들, 우리 든든이들과 재미있는 일들 많이 도모하려고 해.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상황이 좀 나아지면 전세계 든든이들 하나하나 찾아다니고 싶어.”

―이제 진정한 유튜버로 거듭나는 거야? 라디오 디제이 30년에 티브이 홈쇼핑 12년까지 뭐 하나 시작하면 10년은 기본인 사람인데 우리 헤이유라 채널도 최소 10년은 가야겠네? 그럼 우리 나이가….

“당연하지! 나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아. 불확실한 가능성에서 무언가 일구어가는 데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지. 돌이켜보면 라디오도 홈쇼핑도 모두 고정관념과 싸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 안전한 길만 갔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겠지. 유튜브의 생리는 아직 잘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해볼 게 더 많지 않을까 싶어. 사실 유튜브라는 미디어로 귀결됐다 뿐이지 우리 둘이 의미 있는 커뮤니티 채널을 구축해보자는 이야기는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잖아. 10년 준비했으니 앞으로 10년, 아니, 20년은 너끈히 가지 않겠니? 헤이유라에서 환갑파티도 하고, 어머, 상상만 해도 너무 재밌다.”

김정선 컨텐츠그룹담 대표

▶ 방송인 최유라가 지난 2월부터 ‘최유라의 헤이유라’ 첫 영상을 올리고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30년 동안 라디오방송으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유튜버 도전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고 한다.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영상제작을 맡은 컨텐츠그룹담 김정선 대표가 중년에 이르러 시작한 두 사람의 도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