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新트로이카 시대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1. 6. 19. 1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순옥·임성한·문영남 작가의 같은 듯 다른 드라마의 세계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다시 막장의 시대가 열리는가. 김순옥 작가의 SBS 《펜트하우스》, 임성한 작가의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문영남 작가의 KBS 《오케이 광자매》는 '욕먹으면서도' 순항 중이다. 같은 듯 다른 세 작가의 막장의 세계는 어떻게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을까. 

《펜트하우스》는 지난 4월 시즌2를 마무리한 후 두 달여가 지난 현재 시즌3로 돌아왔다. 애초 시즌1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요즘처럼 OTT를 통해 해외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국에 김순옥 작가표 막장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순옥 작가는 이제 아예 19금을 내걸고 더 센 자극으로 돌아왔다. 강남 한복판의 초고층 호화 주상복합에 사는 부유층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갖가지 범죄와, 여지없이 펼쳐지는 그들에 대한 피의 복수극이 '사이다'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펜트하우스》는 28.8%(닐슨코리아)라는 높은 시청률로 시즌1을 마무리했다. 떨어지는 개연성은 오히려 이 자극적인 드라마가 허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줌으로써 일종의 '즐기기 위한 상황극'처럼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막장'이라는 꼬리표 대신 '마라맛'이라는 다소 긍정적인 표현이 붙었다. 가상이지만(어쩌면 가상이어서 더 마음대로 가능한) 짜릿한 사이다 복수극이 주는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SBS 제공

과한 설정에 민폐 캐릭터까지 

하지만 《펜트하우스》는 시즌2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화력이 떨어졌다. 쌍둥이 설정을 통한 반전은 충격적이긴 했지만, 허구라도 너무 과하게 느껴졌다. 죽은 자가 부활해 복수를 하는 이야기는 김순옥 작가가 늘 쓰는 코드지만, 그래서 이제는 조금 식상해진 방식이기도 했다. 이런 일이 그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된 바 있는데, 《펜트하우스》에도 여지없이 그 방식이 쓰이자 이제 시청자들이 믿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누가 죽어도 결국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 여겨지게 된 것. 

이런 문제는 시즌3 첫 회에서 로건 리(박은석)가 폭탄이 터져 사망하는 장면에서도 발생했다. 시청자들은 그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 돌아올 것이라 예견했고, 2회에서는 실제로 갑자기 로건 리의 형 알렉스(박은석)가 레게 파마에 얼굴 문신을 한 채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실소를 쏟아냈다. 반전이 충격이 되지 않고 폭소를 불러일으킨 이 상황은 한때 마라맛이라고 표현됐던 《펜트하우스》가 시즌3에 와서는 결국 '막장'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걸 말해 줬다. 너무 시즌을 계속 이어가다 보니 없는 동력을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수가 계속된 것. 시즌2 정도에서 멈췄으면 괜찮았을 수 있었던 드라마는 시즌3로 오며 그 적나라한 막장의 민낯을 드러내게 됐다.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2》의 한 장면ⓒTV조선 제공

피비라는 새로운 필명으로 다시 드라마의 길로 복귀한 임성한 작가의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이른바 '내로남불(내게는 로맨스, 남은 불륜)' 드라마였다. 한때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는 엽기적인 장면까지 불사했던 작가였던지라, 드라마 초반 '불륜'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는 어딘가 약하게까지 느껴졌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시즌1 중반부터 갑자기 시점을 여성이 아닌 불륜 당사자들인 남성으로 바꾸면서 이야기는 자극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내들에게는 불륜으로 그려졌던 남편의 외도가 남편들의 시선으로는 로맨스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김동미(김보연)처럼 나이 많은 남편이 죽는 걸 방치하는 충격적인 캐릭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남편의 아들인 신유신(이태곤)을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상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왔지만 시즌1은 전반적으로 무리함 없이 잔잔하게(?) 마무리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시즌2는 어딘가 불안한 설정들이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죽은 김동미의 남편이 귀신이 되어 그 집에서 출몰하기 시작한 것. 예전부터 미신에 관심을 가져 《신기생뎐》 같은 작품을 썼던 임성한 작가였다. 여러모로 이런 설정은 또다시 막장 본색으로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KBS2 《오케이 광자매》의 한 장면ⓒKBS2 제공

이 작가들이 생존하는 이유 

문영남 작가의 《오케이 광자매》는 주말극이지만 거의 모든 캐릭터를 '민폐'로 설정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사실상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시대에 가족 드라마가 설 자리는 거의 사라졌다. 유일하게 KBS 주말극이 그 자리를 내주고 있는 건, 그래도 여전히 가족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중장년 시청자들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케이 광자매》는 가족애의 훈훈함을 담기보다 가족끼리도 서로를 물어뜯고 폐를 끼치는 인물들을 가득 세워놨다. 과한 '민폐' 설정이 너무 많이 등장하다 보니 개연성에도 흠이 생겼다. 문영남 작가는 다소 전형적인 드라마 작법을 활용하고 있어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줬던 작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번 작품에서는 '막장'의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그런데도 이들 작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다. 가장 높은 성과는 역시 시청률이다. 《펜트하우스》는 시즌3로 와서 17.5%로 시청률이 다소 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하고 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시즌1에 9.6%로 TV조선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시즌2도 5% 시청률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오케이 광자매》는 주말 드라마치고는 대단히 높은 시청률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30%를 넘기며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김순옥, 임성한 그리고 문영남 작가는 저마다의 생존력으로 이른바 신(新)막장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들의 강점은 조금씩 다르다. 김순옥 작가가 개연성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속도감 있고 파격적인 전개를 하는 것이 강점이라면, 임성한 작가는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이면을 통해 보이는 이상하고 때론 엽기적인 인물들의 행태로 강력한 극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면 문영남 작가는 '지질한 인간의 밑바닥'을 끄집어내는 일련의 작품들로 '지지고 볶는' 가족의 이야기에 능하다. 

OTT로 전 세계의 다양한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대에 '막장'은 더는 설 곳이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이미 남미를 중심으로 소프 오페라 같은 막장 드라마들이 그 자극을 무기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현실과 달라 개연성이 없다고 비판받아도 타국에서는 그 현실을 잘 몰라 재미있게 보는 이도 적지 않다. 《펜트하우스》가 중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건 이런 현실감에 대한 편차 때문에 생겨난다. 답답한 현실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갈증이나, 금기를 넘는 이야기는 늘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다만 조금만 더 완성도와 개연성에 공을 들이면 안 될까. 같은 소재라도 막장과 명작의 차이는 바로 거기서 판가름 나는 것이니 말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