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전주 홍등가 '선미촌', 오피스텔·원룸 촌 파고드는 성매매

김정엽 기자 2021. 6. 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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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길 건너의 집창촌 거리 일대의 모습. 골목길 사이로 남성 여러명이 서성거리고 있다. 본 기사와는 상관없는 사진. /조철오기자

“우리 가게 처음이죠? 신분이 확실해야….”

지난 3월 9일 오후 11시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한 원룸 촌. 성매수 남성으로 위장한 A씨가 ‘오피스텔 성매매’ 알선책과 접선했다. 알선책은 A씨에게 “인증된 손님만 받고 있다. 사원증 또는 명함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준비한 명함을 보여줬다. 그러자 알선책은 2차 검증 과정을 시작했다.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와 주소, 회사 이름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이런 과정은 A씨가 지니고 있던 녹음 장치에 고스란히 담겼다.

알선책이 A씨를 데리고 성매매 여성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이때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전북경찰청 소속 수사관이 현장을 덮쳤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알선책은 처음에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경찰이 제시한 증거에 범행을 인정했다.

남은 건 성매매 업주 검거. 경찰은 알선책 휴대전화를 분석하고, 주변 탐문 등을 통해 30대 여성 업주 2명을 검거해 구속했다. 이들은 밤늦은 시간에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면서 하루 80~90만원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집창촌이 사라지면서 성매매는 더욱 은밀해졌다”고 말했다.

◇'영업 제로화' 선언한 집창촌, 일상으로 파고든 성매매

폐쇄된 집창촌./뉴시스

전북 전주시는 이달 말까지 관내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 영업을 종료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주시가 선미촌에 대한 정비를 추진한 건 지난 2014년 김승수 시장이 취임하면서다. 이후 2015년부터 135억원을 들여 선미촌(2만2276㎡)에 있는 낡은 성매매업소 건물을 점진적으로 사들였다. 급격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여성들이 오피스텔 성매매 등으로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업 기간을 8년으로 길게 잡았다.

선미촌은 업소 200곳에서 성매매 여성 300여명이 모여 영업하던 ‘전성기’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업소가 3곳으로 줄었다. 그마저도 경찰의 강력한 단속 탓에 거의 영업을 못 한다고 한다. 성매매 단속 건수도 줄어드는 추세다. 정비사업 이듬해인 2016년에 372건이 적발됐는데, 2017년 294건으로 전년보다 78건 줄었다. 2018년 56건에서 2019년 93건으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69건으로 다시 줄었다.

통계상으론 성매매 집결지가 사라지면서 단속 건수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성매매 현장 단속에 나섰던 한 경찰관은 “요즘은 너무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예전보다 단속이 훨씬 어렵다”며 “예전에는 집창촌에 성매수 남성들이 모였는데, 이제는 성매매가 일상으로 파고들어 은밀하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4000명 성매매 리스트' 실체 드러낸 풍선효과

전주시가 선미촌 정비를 추진한 지 1년 6개월 만에 대형 성매매 사건이 터졌다. 지난 2016년 전주 지역 오피스텔과 주택가에서 상습적으로 성매매를 알선한 일당이 검거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업주 B씨를 구속하고, 직원과 성매매 여성 등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B씨는 2015년 11월부터 8개월 동안 전주 지역 원룸과 오피스텔 10곳을 임대해 운영하면서 1회당 15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알선했다. B씨는 5곳을 직접 관리하고 5곳은 바지사장을 내세워 운영했다. 조사결과 모두 1000여 차례 성매매를 알선해 1억60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4000여명의 연락처와 명단 등이 적힌 성매매 장부를 확보했다. 이 명단에는 교수부터 일용직 노동자까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이름을 올렸고 의사와 군인, 교사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장부엔 고객의 연락처, 성별, 나이뿐 아니라 ‘성적 취향’, ‘좋아하는 여성의 체형’, ‘이용횟수’, ‘가입 경로’ 등 세세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B씨는 이런 장부를 다른 성매매업소들과 이 명단을 공유하며 영업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단속당한 전화번호 공유' 함정 수사까지 대비한다

전국에 있는 집창촌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이른바 ‘오피’로 불리는 오피스텔 성매매가 성행했다. 당초 성매매 업자들이 주로 노리는 곳은 직장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오피스텔이었다. 이곳이 경찰의 집중 단속 대상에 오르자 최근엔 원룸이나 빌라 촌으로 이동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낡은 원룸이나 빌라 촌을 선호한다. 월세가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깔세(보증금 없이 시세보다 비싼 월세로 단기계약 하는 형태)’로 계약해 단속을 당해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쉽다.

수법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인터넷 성매매 사이트에서 1차 인증을 받고, 성매매 현장에서 다시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은 성매매 사이트 주소를 수시로 바꿔가면서 경찰의 단속망을 피하기도 한다.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 사용도 일반화돼 있다. 텔레그램을 통해 신분증과 명함 사진을 받아 사전 점검을 하기도 한다. 성매매 업소들끼리 이런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른바 ‘인증된 손님’만 받는다. 성매매 단속을 위한 경찰의 함정수사가 합법이 됐지만, 이들은 단속에 사용됐던 전화번호까지 공유하며 단속에 대비한다.

전북경찰청 성매매 단속 경찰관은 “단속을 당하면 1주일 정도 조용해지다가 다시 영업을 한다”며 “현재는 업주와 성매수 남자에게 처벌이 집중되는데, 성매매의 한 축인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음성적인 성매매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사지 업소를 위장한 유사성행위 업소도 문제”라며 “현재는 화장품 도·소매업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신고만 하면 할 수 있는데, 관련 법을 보완해 이 업소에 대한 관리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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