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의 오랜 꿈..'현대차 반도체' 성공할 수 있을까

이종혁 2021. 6. 1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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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사진제공=현대차
[MK위클리반도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2010년대 초부터 줄기차게 반도체 내재화를 주창했다. 내연기관차가 대부분이었던 완성차 업계에는 이 같은 주장이 낯설었던 시기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달랐다. 그는 장차 전기차(EV)와 자율주행차 시대로 전환하면서 반도체 부품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봤다. 파워트레인부터 철강재까지 수직계열화 DNA를 자부하던 현대차그룹이었던 만큼 반도체 내재화에 대한 열망도 컸다.

현대차그룹이 반도체 내재화를 책임질 현대오트론을 출범한 것은 2012년이다. 그러나 반도체 설계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오트론의 역량을 단숨에 끌어올리기는 어려웠다. 때마침 중국 시장 위기와 정 회장의 건강 악화가 닥치면서 현대차그룹의 반도체 내재화는 후일의 과제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랬던 현대차그룹이 다시 한번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국산화에 시동을 걸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부족으로 전 세계 완성차 업계가 연일 생산 차질을 겪어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수차례 생산 차질을 겪은 현대차·기아가 올해는 반도체가 없어 가동 중단(셧다운)을 반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반도체 내재화는 이제 장기 생존을 담보할 중대 과제가 됐다.

현대차는 반도체 자체 개발을 넘어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그룹 차원의 청사진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코로나19 위기 와중에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을 겪으며 이 같은 전략을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캡처

차량용 반도체는 전자기술에 기반한 EV가 대중화되고 자율주행이 발달할수록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최신 완성차에는 1대당 반도체 200~300개가 탑재되지만 2030년께에는 반도체 수천 개가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국내 완성차 업계는 외국산 반도체에 의존하면 지금처럼 수급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인식했다"며 "반도체 국산화는 물량과 원가 경쟁력 부족으로 초기 비용이 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수급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반도체 자립을 위한 첫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현대차그룹은 핵심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에 반도체 사업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작년 12월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덩치가 훨씬 큰 현대모비스에서 아낌없이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올해 초 연구개발(R&D) 부문에 반도체 설계 섹터를 신설해 시스템반도체 등 차량용 반도체 자체 설계·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기술 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차량용 반도체인 전력 반도체와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을 우선 자체 개발해 국산화한다는 목표다. 이어 자율주행차 부품인 첨단운전자보조(ADAS) 반도체, 인포테인먼트에 쓰이는 시스템온칩(SoC)도 차차 자체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물론 현대모비스가 설계를 담당하고, 생산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가 맡는 방식이다.

재계 관계자는 14일 "현대모비스는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와 안정적 확보를 위해 국내 반도체 수탁생산 회사에 생산을 위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역량 있는 반도체 설계(팹리스) 전문기업 인수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그룹과 국내 파운드리 업계 간 협업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다수 자동차·반도체 업계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현대모비스는 국내 파운드리 기업인 DB하이텍·키파운드리(옛 매그나칩반도체 파운드리 부문)와 접촉해 반도체 공동 개발 의사를 타진했다. 현대모비스가 우선 제안한 품목은 전력 반도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양측은 공동 개발할 부품의 사양과 개발 비용을 산정하는 초기 단계 협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다만 현대모비스 측 공식 입장은 "반도체 업계와 구체적으로 협의 중인 공동 개발 사안은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를 비롯한 산업계에서는 전반적으로 현대차그룹과 파운드리 업계 간 협업을 반기는 분위기다. 국내 산업계는 이번 협업이 결실을 보면 그간 NXP(네덜란드)·르네사스(일본)·인피니언(독일) 같은 해외 기업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전략물자'로 떠오른 자동차 반도체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길이 열린다고 보고 있다.

또 이번 협업은 일본의 10분의 1 크기에 불과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업계가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올해 3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차량용 반도체 매출액은 2019년 기준 9억4000만달러(약 1조500억원)로 미국(129억7000만달러), 일본(92억6000만달러), 독일(71억8000만달러)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율은 5% 미만이며 핵심 반도체는 NXP·르네사스·인피니언·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대부분 공급받는다.

자료=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캡처

물론 현대차그룹과 파운드리 업계의 공동 개발이 성과를 내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최소 1~2년은 걸릴 것이란 분석이다. 정보기술(IT) 제품과 달리 자동차용 부품은 성능 검증이 매우 까다롭다. 한 번 계약하면 수년간 장기 계약이 기본이어서 NXP·르네사스·인피니언의 공고한 장벽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산업계와 정부는 이번 기회에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매우 크다. 차량용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도 급속한 성장이 기대되는 데다 반도체는 물론 자동차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할 주요소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한편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에 적극 동참할지도 관심사다. 두 업체의 차량용 반도체 비중은 미미하다. 대부분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들어갈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는 정도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는 자율주행차 반도체를 개발하면서 현대차와 협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조만간 수십조 원을 들여 NXP·인피니언 같은 거대한 차량용 반도체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역시 오토모티브 사업팀을 만들어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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