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공학 실험을 멈추다

이병철 기자 2021. 6.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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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스웨덴 이스레인지우주센터에서 미국과 유럽, 캐나다 연구팀이 개발한 풍선우주망원경 블라스트(BLAST)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층권에 풍선을 띄워 미세입자를 뿌리는 지구공학 실험 스코펙스(SCoPEx)는 6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국제사회의 우려로 중단됐다. 과학동아DB

거대한 풍선이 하늘 위로 떠올라 약 20km 상공, 성층권에 닿는다. 풍선 아래에서는 탄산칼슘 가루가 뿜어져 나오며 강력한 햇빛이 지표면에 닿기 전 반사한다. 6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행할 예정이던 지구공학(Geoengineering) 실험, 스코펙스(SCoPEx)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극복할 창의적인 방법으로 꼽히던 스코펙스는 시행을 두 달여 앞둔 4월 돌연 연기를 선언했다. 지구의 미래를 건 실험은 무슨 이유로 연기된 것일까.

지구의 기후시스템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 기후를 조절하는 연구 분야가 있다. ‘지구공학’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제안돼 60여 년 동안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돼 왔다.

지구공학 기술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줄이는 ‘태양 복사 관리(SRM)’와 온실가스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이산화탄소 제거(CDR)’다. 스코펙스는 태양 복사 관리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외에도 태양과 지구 사이에 거대한 반사판을 설치하는 방법 등이 제안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은 탄소포집·이용·저장(CCUS)과 광합성 생물 등을 이용한다.

스코펙스는 미국 하버드대팀이 기획한 지구공학 실험이다. 태양 복사 관리를 위해 성층권에 탄산칼슘(CaCO3) 등 미세입자를 뿌려 햇빛을 반사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 알아볼 실험으로 관심을 모았다. 6월로 예정됐던 실험은 이 실험을 하기 전 플랫폼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비행이었다. 

하지만 지구공학 실험 자체를 둘러싼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스코펙스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스코펙스 자문위원회는 “사회적 논의를 마칠 때까지 실험을 미뤄야 한다”며 “최대 2022년까지 미룰 수 있다”고 말했다.

미지의 기후시스템 부작용은 누구 몫

2019년 몬순 기후대에 속하는 인도에서는 2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폭우가 내렸다. 기후학자들은 스코펙스(SCoPEx)가 몬순 기후를 교란해 개발도상국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연합뉴스 제공

가장 큰 쟁점은 스코펙스 실험으로 나타날 부작용에 관한 연구가 아직 충분치 않는 점이다. 미국 럿거스대가 이끄는 지구공학 모형 상호비교 프로젝트(GeoMIP)에서는 다양한 기후시스템 모델을 결합해 CDR 기술이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있다. 하지만 스코펙스와 같은 SRM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 기후모델이 아직 복잡한 기후과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도 한계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미래기반연구부 팀장은 “한국의 K-ACE를 포함해 전 세계 약 15개 국가가 기후모델을 연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기후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며 “전체적인 기후 변화는 일정 수준 예측하더라도 각 지역과 개별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구공학 실험에 앞서 보다 정확하고 다양한 기후시스템 모델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현재 기후시스템 모델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의 부작용은 예상할 수 있다. 기후학자들이 예상하는 스코펙스의 부작용 중 하나는 열대 몬순 기후의 교란이다.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몬순 기후 교란은 햇빛 차단으로 비열이 다른 육지와 바다에 온도 차이가 생길 경우 발생한다”며 “그렇게 되면 구름이 생기고 강수량이 변화해 해당 지역에 이상 기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실제로 이런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이 입는다. 민 교수는 “몬순 기후대에 속하는 국가 대부분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해오지 않았다”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의 피해를 오히려 이들 국가에서 받는다는 사실은 기후 정의의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라고 말했다.

스코펙스도 비슷한 우려를 낳는다. 애초 스코펙스는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며 스웨덴 이스레인지우주센터에서 발사하는 계획으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실험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실험을 주도한 미국이 아닌 스웨덴 일대 유럽지역이나 주변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스코펙스가 취소되기 두 달 전인 2월에는 이스레인지우주센터 인근에 사는 원주민의 단체인 사미 의회가 스코펙스 자문위원회에 서한을 보냈다. 사미 의회는 스코펙스가 기상과 생태계에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미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고통을 받는 바 있다. 실제 이들의 서한은 스코펙스가 취소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일웅 강릉원주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스코펙스를 둘러싼 논쟁 중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바로 실험 기획자와 부작용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선량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실험이니만큼 시행 이전 철저한 기반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구공학 기술은 태양 복사 관리(SRM)와 이산화탄소 제거(CDR)로 나뉜다. SRM은 미세입자와 반사판 등을 이용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하는 기술이고, CDR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거나 광합성 생물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구 기후에 인간이 직접 개입하는 만큼 부작용과 연구윤리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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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기자 alwaysa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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