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서부, 황무지라고 개척 않나? 가상자산, 규제 일변도 법률로 산업 죽여선 안 돼"

노자운 기자 2021. 6.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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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상자산 관련 법률 전문가 조정희 법무법인 '디코드' 대표변호사
"산업 보호, 육성할 법률 만들 시기"
미국 서부처럼 무궁무진 발전할 가능성 큰 시장이 가상자산 산업

지난 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 발의 계획을 내놓았다. 법안은 가상자산업을 하려면 금융 당국에 등록이나 신고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했으며, 각 거래소가 통정매매(물량과 가격 등을 사전에 담합하고 매매해서 가격을 의도적으로 올리는 행위)와 시세 조종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상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법률 제정안이 가상자산업의 제도권 편입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현행법 상 가상자산업을 규율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마땅한 장치가 없기 때문에, 산업을 제도권 안에 포함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조정희 변호사는 해당 법안의 검토에 참여한 법률 전문가다. 가상자산과 관련된 법률 검토 업무는 2016년에 처음 시작했으며, 이듬해인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계속해왔다. 11년 간 법무법인 세종에 몸담으며 파트너 자리까지 올랐던 조 변호사는 이달 초 세종을 떠나 법무법인 디코드를 개업했다. 디코드는 세종의 파트너 변호사 4명이 만든 법무법인으로, 개업과 동시에 법조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디코드 사무실에서 조 변호사를 만나 가상자산업 관련 법률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조 변호사는 가상자산의 자금세탁 방지 등 규제만을 강조하는 현 법체계에 더해 가상자산 산업을 보호, 육성해야할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가상자산) 산업을 법률로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했다. 가상자산 산업은 “다른 형태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며 “가상자산 시장의 발전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 법률이 필요한 시기”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 서부개척 시대를 예로 들었다. 황무지였던 서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었지만 현재는 엄청난 도시로 발전했든 가상자산 산업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디코드에서 조정희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가상자산 관련 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기업의 인수·합병(M&A)과 관련된 법률 자문을 주로 하다 보니, 고객사 가운데 벤처캐피털(VC) 등 투자 회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2016~2017년부터 VC들의 피투자사 중 가상자산 관련 기업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고객사 중 카카오벤처스(옛 케이큐브벤처스)가 있었는데, 이 회사가 투자한 기업 중 두나무가 있다. 두나무도 2017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개설하기 위해 해외 거래소 비트렉스와 제휴를 맺었는데, 이 때 법률 자문을 해줬다.”

오늘(17일)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 예고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가 자전거래를 못하게 됐으며, 본인이나 특수 관계인이 발행한 가상자산을 취급하지 못하게 됐다.

“산업에 필요한 규제가 적절하게 도입되는 과정이다. 자전거래를 금지하거나 본인 혹은 특수 관계인이 발행한 코인의 상장을 규제하는 것은 이해 상충 방지 체계와 관련 있으며, 필요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개정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금융 당국에서 앞으로 상세한 규제를 점진적으로 만들어나갈 것 같다.”

특금법을 앞두고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코인들을 줄줄이 상장폐지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나.

“일률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코인의 신규 상장이나 상장폐지와 관련된 일반적인 기준이 없다. 법은 물론 관련 규제도 존재하지 않아, 각 거래소의 재량에 맡겨진 상태다. 거래소 내부 규정에 근거해 상장폐지했다면,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서 ‘손해배상 채권이 발생했다'고 문제 삼기 쉽지 않다. 다만 도의적인 문제는 있다고 볼 수 있다. 알트코인의 거래 활성화 덕에 수수료 수익을 많이 벌어들이더니 이제 와서 코인을 무더기로 없애버리면 어쩌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또, 코인의 ‘자격 미달’을 논하는 기준이 무엇이냐 역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가상자산의 상장폐지 기준을 법적으로 마련해야 할까.

“법률적 판단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분산돼서 여러 개 존재하기 때문에, 중앙화된 거래소에서 관리할 수 있는 증권과는 성격이 다르다. 가상자산업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규율은 법률이나 시행령보다는 자율 규제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현존하는 블록체인협회와는 다른, 준정부 기관에 해당하는 협회를 만들고 그 곳에서 자율 규제를 정해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민간 기업인 만큼, 어느 정도는 민간의 자율에 맡기고 금융위원회에서 이를 모니터링하면 될 것이다.”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디코드에서 조정희 대표 변호사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가상자산 업권법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이유는.

“특금법은 가상자산업을 위해 만든 법이 아닌 자금세탁방지법이다. 자금세탁방지금융대책기구(FATF)에서 각국 금융정보분석원들이 가상자산 규제와 자금세탁 방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놓자, 이미 존재하던 특금법 안에 가상자산을 포함한 것이다. 업권법이 필요한 이유는 가상자산업에서 자금세탁 외에도 다뤄야 할 이슈가 많기 때문이다. 특금법에서 다룰 수 없는 이슈들을 규율화하기 위해 업권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상자산업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과 이용자 보호 영업 행위 준칙 등은 업권법에서 다루고,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금세탁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금법으로 다루는 것이 법체계 상 바람직하다.”

현재까지 논의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들은 대부분 규제와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의 발전을 같이 논할 필요는 없을 지.

“제대로 된 법률이라면 규제와 보호, 육성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 규제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산업을 법률로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규제의 논리만 들이댄다면 정상적인 사업자들까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지금의 가상자산 시장이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형태로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디지털 자산시장의 발전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 법률이 필요하다. 일단 초석을 놓고 난 후, 계속 고쳐나가며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카오 계열사인 그라운드X에서 발행한 클레이튼 코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기업 계열 코인인데, 대기업의 코인 발행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대기업이 코인 사업을 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이른바 ‘잡코인’들이 많아 가상자산 산업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논란이 크다면, 대기업들이 코인을 직접 발행하는 것이 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클레이튼이 카카오톡 안에서 거래되거나 다양한 서비스에서 활용되는 사례를 보여준다면, 가상자산 시장 전체에는 긍정적인 시그널이 될 수 있다.”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디코드에서 조정희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요즘은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서비스) 코인에 대한 수요도 점차 늘고 있다. 디파이 코인의 핵심은 탈중앙화인데, 탈중앙화와 법적인 규제는 본질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병존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디파이의 탈중앙화 이념을 현재 제대로 구현할 시스템이 없다. 그러나 시스템이 만들어져 이런 이념을 구현할 수 있게 돼도 법률은 이를 따라 가기 어려울 것이다. 디파이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세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힘들고 ‘탈중앙화 플랫폼들이 어떻게 구동돼야 한다’는 수준의 일반적인 규정에 그칠 것이다. 다만, 가상자산업법을 만들 때, 디파이 같은 새로운 금융 현상을 어떻게 규정할 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물리적 그림을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대체 불가능 토큰(NFT)으로 만들어 팔면, 실물 그림에 대한 법적 소유권 문제는 없을까.

“오프라인으로 존재하는 그림을 디지털 이미지로 만든다면, 디지털 파일의 별도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원작자의 인증이 있어야 한다. 원 그림과 디지털 파일 사이의 연결과 관계에 대해 원작자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NFT가 디지털 파일이 아닌 다른 실물 자산과 연결됐다고 말할 때는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 법적으로 어떻게 뒷받침되는지 NFT 발행인이 분명하게 입증해야만 한다.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사기 행위가 될 수도 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혼란스러운 무법지대인가, 아니면 시장이 형성돼가며 겪는 성장통인가.

“둘 다 해당된다. 가상자산 시장의 현주소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와 비슷하다. 미국 동부에 살던 사람들이 금광 발견 소식을 듣고 서부로 몰려가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직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서, 무법자들이 좋은 사람들을 총으로 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서부가 황무지고 발전할 가능성이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적당한 보안관과 훌륭한 공직자를 보내서 관리한다면 얼마든지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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