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생각없이 해야 잘 되는 일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1. 6. 19.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많은 고민과 고심 끝에 무엇을 한다든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의 장점과 단점을 열 가지씩 써 가면서 철저하게 분석을 하거나, 그 일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이유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지는 등 어떤 목표든지 많은 '생각'을 거쳐 이행하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물론 머리 아프게 많은 요소들을 따져가며 나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요, 중요한 목표와 그렇지 않은 목표를 쳐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필수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만)을 ‘과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많은 요소를 고려하면 고려할수록, 예컨대 아침마다 운동하기로 했는데 비가 온다거나, 오늘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는 등 하루에도 수없이 변화하는 상황적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다보면 그 때 그 때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이 수도 없이 바뀌게 된다. 

“굳이 비 오는 날 운동을 할 필요는 없잖아? (오늘은 비가 와서, 내일은 추워서, 또 그 다음날은 너무 더워서, 햇빛이 너무 강렬해 등등) 지금 운동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것 같아. 운동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날씨, 장소, 나의 기분, 최신 워크아웃 패션 등)이 갖춰지면 그 때부터 해도 늦지 않아. 또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하루 이틀 빠지는 게 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겠어. 지금 운동보다는 OO가 더 급한 일이고 OO를 하는 게 사실 더 합리적인 선택이야. 그러고 보면 운동 굳이 매일 해야 하나? 등교·출근 시간 동안 이미 충분히 걷고 있지 않나?” 같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오늘도 내일도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 병원이나 관공서 등에 누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내일 가지 뭐"와 같이 다른 목표들도 마찬가지다. 여러가지 이유를 떠올리며 원래의 계획을 수십번 수정하다가 이젠 너무 늦었다며 결국은 하지 않게 되는 경우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목표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의 실제 계획이란 깃털같이 가벼운 성질을 갖고 있어서 내가 하는 생각의 수만큼 하루에도 몇 번씩 급변한다.  ‘지금 할까? 말까? 할까? 말까?’하고 가볍게 묻는 것만으로도 ‘하지 말자’와 ‘하자’ 사이를 휙휙 오가고, 보통 하기 싫은 이유는 언제나 산더미 같이 존재하므로 ‘하지 말자’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돌맹이와 바위의 싸움이랄까. ‘할까’와 ‘말까’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시점에서 이미 후자가 반쯤 이긴 게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뉴욕대 심리학자 피터 골위처(Peter Gollwitzer) 등의 학자들은 한 번 하기로 했으면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그냥, 무조건 할 것을 추천한다. 예컨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아침에 일어나면 10분 산책한다거나, 지하철에서는 무조건 계단을 이용한다 등 정해진 상황이 되면 그냥 하는 행동 계획을 정해두는 것이다. 물론 실현가능한 내용이어야 한다. 달리기 초보가 갑자기 매일 아침마다 10km 달리기 같은 계획을 세우는 것은 시작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아침마다 헬스장에 가기로 했는데 항상 시간에 쫓기는 것이 문제라면 가급적 집이나 회사에서 가까운 헬스장을 선택하거나, 원래 리듬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면 아침보다는 다른 시간을 고르는 것도 좋다. 아침 식사로는 신선한 야채를 먹기로 했다면 샐러드 거리를 냉장고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구비해 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예컨대 학생들에게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라도 집중해서 문제를 풀라고 말했을 때와, 그냥 계속해서 문제지에서 눈을 때지 말라고 말했을 때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후자에서 더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최근 뉴욕대 연구자 티모시 발쉬타인(Timothy Valshtein) 등의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단순하고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액션 플랜들이 불면증에도 효과적이다. 자야 하는데 쉽게 잠에 들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잠이 오지 않는 것 못지 않게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자기 싫다며 자러 가는 시간을 일부러 미뤄서 필요한만큼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취침 시간 미루기(bedtime procrastination)’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나 역시 왠지 오늘은(사실 대부분의 날) 일찍 자기 싫다며 몸은 잔뜩 피곤한데도 새벽 1시, 2시까지 열심히 취미활동을 해서 결국 잠이 달아나게 만들고, 그 결과 이제 진짜 늦었으니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즈음에는 쉽게 잠에 들지 못해서 새벽 4~5시까지 말똥말똥한 눈으로 뒤척이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등 수면위생을 실천해야겠다는 목표는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실천한 적은 별로 없었다. 

연구팀은 한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수면위생을 열심히 실천할 것을 다짐하게 만들었고,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설정한 자야하는 시간이 되면 무조건 불을 끄고 휴대전화도 멀리 치워두고 잠이 오든 말든 눈을 감는다는 등의 액션 플랜(이런 상황이 되면 무조건 이렇게 한다)을 세우게 했다. 그 결과 후자에서 취침 시간 미루기가 더 감소하고 규칙적인 시간에 잠에 드는 등 불면증이 더 빨리 해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의 경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게까지 취미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문제여서 알람을 맞춰두기로 했다. 새벽 1시가 넘어가면 30분 단위로 잘 준비 해라, 불 꺼라, 누워라 같은 메시지가 오게끔 설정하려고 한다. 이렇게 특정 상황과 연결된 액션 플랜들은 익숙해지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습관’이 되기도 쉬우므로 실천해보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삶의 많은 문제들이, 아주 큰 것이라고 해도 결국 그 해결은 작은 행동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대부분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컨데 건강에 이상이 생겨 걱정이 되는 경우, 지나친 걱정과 생각은 때로 역효과를 내므로 일단 지금 해야 하는 액션이 뭔지—우선 병원 예약, 진찰 받기, 건강하지 않은 생활 습관 정리하기, 일찍 자기 등을 정리해 보는 것이 그 어떤 걱정보다도 건강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삶의 문제들은 대체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작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해결이 어려워지며 내가 행동하는 것만큼 쉬워질 수 있다. 

※참고자료

Timothy J. Valshtein, Gabriele Oettingen & Peter M. Gollwitzer (2020) Using mental contrasting with implementation intentions to reduce bedtime procrastination: Two randomized trials, Psychology & Health, 35, 275-30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