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집어삼킨 화마, 탄냄새 대신 샴푸향 느껴졌다 [뉴스원샷]

김승현 입력 2021. 6. 19. 05:02 수정 2021. 6. 19.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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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 택배, 가깝고도 먼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사고는 그 규모 면에서 어마어마합니다. 연면적으로 축구장 15개 크기보다 큰 창고입니다. 얼마나 많은 택배 물건이 있었을까요. ‘천문학적’인 배송 물건 수와 피해액이 곧 정리될 겁니다.

그런데, 사고 현장을 취재한 후배 기자는 “탄 냄새와 함께 샴푸 냄새가 많이 난다”고 보고하더군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재난의 현장은 우리의 일상 속 편리와 연결돼 있었습니다. 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 중에 샴푸류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강력한 탄 냄새를 이기며 샴푸향이 났다면, 그 양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이번 화재로 소비자들은 예정일보다 짧게는 이틀 정도 늦게 배송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일부 제품은 품절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서울 서남부권과 경기 지역 소비자들이 영향을 받을 전망입니다.

뼈대 드러난 쿠팡 덕평물류센터. 연합뉴스

출ㆍ퇴근길 우리를 미소 짓게 하던 반가운 ‘로켓배송’을 이런 대형 사고에서 접하게 된 것도 충격입니다. 불길이 잡히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로켓배송을 위해 쌓인 물건들이 불씨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전해졌습니다. 스프링클러에서 나온 물은 성벽처럼 쌓인 물건 사이의 발화지점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버선발로 반겼을 상품이 불쏘시개가 됐다니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택배는 언젠가 배달되겠지요. 실종된 27년차 소방경 김모 대장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30분 안팎을 버틸 수 있는 산소통만 지녔는데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건물 일부와 가연성 물건이 무너지는 순간, “대피하라”는 현장 지휘부의 무전이 떨어지자 다른 대원들을 먼저 내보냈다고 합니다.

친구같은 이미지의 로켓배송이 거친 화마로 돌변한 것처럼 택배는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진 것 같습니다. 택배대란 때의 갈등, 택배 위장 살인사건의 공포,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이라는 화려함 등등…. 코로나19라는 인류 최대 위기 상황이 최고의 성장 기회였다는 점도 아이러니합니다.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사진 독자 김태권]

이제 화재 수습이 남았습니다. 불을 끈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쿠팡을 비롯한 택배회사와 물류센터, 정부 당국 등이 살펴봐야 할 일을 독자들은 이미 댓글로 적어뒀더군요. 여러 기사에 달린 〈아래〉댓글을 한번 음미해봤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의 거대 시스템이 된 택배는 그동안 우리에게 샴푸향을 풍기고 있었을까요, 매캐한 탄내를 내뿜고 있었을까요.


<아래〉
“지들 돈 벌고자 저렇게 건물을 크게 지었으면 최소한 자체 소방팀들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돈은 부자들이 벌고 목숨은 서민들이 바치는 개 같은 세상.”

“경기도지사는 아직도 선거운동만 하나?”
“돈 아끼겠다고 관리 개떡같이 했겠죠?”
“처음 진화됐다는 뉴스 낸 기자 엄벌해라. 이게 뭐니?”

“쿠팡 물류들 다 타버려도 좋은데 소방관 무사하면 좋겠다.”

“알바들만 쥐 잡듯이 잡고 지들은 아가리 파이터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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