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기본소득 논란에 소환된 노벨상 경제학자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1. 6. 19. 03: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네르지(Abhijit Banerjee)와 뒤플로(Esther Duflo).

소비자는 개인별로 모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생산자 입장에서 최선은 이러한 개인의 취향에 맞춰 제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해 공급하는 것이다. 같은 떡볶이라도 매운 정도를 조절해 차별화하는 것이 한 예다. 그런데 일반 제조업에서 이렇게 고객에게 맞춤형으로 제품을 차별화하면 전체적으로 생산 비용이 올라가는 문제가 생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은 규모의 경제에 역행할 뿐 아니라 소비자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요 및 재고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용 상승은 판매 가격에 전가되어 제품군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기업들은 몇 개 유형의 제품을 출시하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최근 유승민 전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윤희숙 의원 그리고 정세균 전 총리 사이에 기본소득과 관련해 논쟁이 있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을 비판하자 이재명 지사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네르지(Abhijit Banerjee)와 뒤플로(Esther Duflo)를 인용해 반격했고 이에 대해 윤희숙 의원과 정세균 전 총리가 재반격을 한 것이다. 바네르지와 뒤플로는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란 저서에서 가난한 나라에서는 ‘보편기본소득’이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에 대한 해석을 두고 설전을 벌인 것이다.

사실 바네르지의 주장은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요는 이렇다. 상기한 바와 같이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제품은 각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맞춤형 제품이다. 문제는 맞춤 정도를 높이면 원가가 높아져 가격이 높아지게 된다. 복지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이상적인 복지는 개별 국민의 니즈(needs)에 맞춘 맞춤형 복지다. 어떤 사람은 부자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다. 또 어떤 사람은 건강한 반면 어떤 사람은 질병에 시달리고 장애로 고생할 수도 있다. 연령에 따른 고민거리도 상이하다. 즉,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제약의 정도가 개인별로 상이하다. 따라서 각 개인이 처한 상황과 제약 조건을 재단해 맞춤형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복지 소비자인 국민들의 효용, 즉 만족도를 높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맞춤형 복지 역시 ‘맞춤 정도’를 높일수록 비용이 더 들게 된다. 정부와 개인 간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 개인이 처한 상황, 소득이나 건강 상태, 그리고 선호도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만큼 어떤 국민에겐 특정 부문에 있어 복지 비용이 과다 지출되는 반면 어떤 국민에겐 과소 지출될 수 있으며 심지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개인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고의로 악용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려면 정보 획득 비용과 맞춤형 서비스를 위한 비용 등 행정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즉, 복지 역시 국민들의 만족도와 행정 비용 사이에 상충 관계(trade-off)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국은 행정 역량에 따라 맞춤형 정도를 조절해야 한다. 행정 역량이 높은 국가라면 행정 비용이 낮은 만큼 맞춤형 정도를 보다 높일 수 있다. 바네르지가 주장한 울트라 기본소득은 지급 대상에서 25%의 소득 상위 계층을 제외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맞춤 수준이 낮은 스텝(step)형 절충안이며 최근 대안으로 떠오른 부의 기본소득은 이보다 좀 더 맞춤형 수준이 높은 또 다른 절충안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빅데이터나 AI 등 정보 축적 및 처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행정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되어 맞춤 정도를 높이는 데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안은 현재의 맞춤형 복지 체계 위에 ‘용돈’ 수준의 기본소득을 추가로 지급하는 안이다. 바네르지가 말한 기본소득과는 명칭만 같을 뿐 내용은 천지 차이다. 기존 복지 체계라는 함수의 형태를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y축의 절편 값을 높이는 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네르지가 기본소득을 주장했다는 이 지사의 인용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 인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지사의 기본소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러한 논의에 굳이 ‘노벨경제학상’이란 권위에 빗대 정적을 공격한 발상도 좀 씁쓸하다. 그렇게 따지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부의 소득세를 주장했고 크루그먼(Paul Krugman)은 기본소득세를 반대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논쟁에서 ‘의문의 일패’를 당한 패자는 얼떨결에 한국 정치에 소환된 노벨경제학상일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