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농부들이 ‘아르마니’ 입는 농촌 만들고 싶다”

밀양/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1. 6. 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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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초당 옥수수 국내 첫 소개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

초당 옥수수는 최근 3~4년간 식품업계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힌다. 당도(糖度)가 평균 18브릭스(brix) 정도로 일반 옥수수와 비교하면 3배 이상이고 수박이나 멜론만큼 달다. 초당(超糖)이라는 이름 자체가 ‘수퍼 스위트(super sweet)’, 매우 달다는 뜻이다. 수분 함량은 약 90%로 찰옥수수(약 50%)보다 훨씬 높은 데다 알맹이 껍질이 얇아서 씹으면 아삭한 식감이 옥수수보다 사과·배 등 과일에 더 가깝다. 열량은 100g당 96kcal로 찰옥수수의 68%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경남 밀양 초당 옥수수밭에서 만난 김재훈 대표는 “처음 국내 소개했을 때는 초당이라면 두부로 유명한 강원도 초당으로 알았다”며 웃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재훈(37) 식탁이있는삶 대표는 초당 옥수수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다. 그는 ‘농산물계의 문익점’이라 불리기도 한다. 초당 옥수수 외에도 자연 동굴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켜 당도를 높인 ‘동굴 속 호박고구마’, 작고 달고 꼭지가 없어서 통으로 먹을 수 있는 ‘스낵 토마토’, 탁구공만 한 참외, 보라색 당근, 사과 맛이 나는 파프리카, 전통 재배법대로 복원한 의성 토종 마늘, 조선 왕실에서 김장 담글 때 사용한 경기도 ‘분원배추’ 등 새로운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소개해왔다.

30대 중반을 갓 넘긴 나이지만 김 대표는 롤러코스터처럼 낙폭 큰 삶을 살아왔다. 20대 중반 아프리카 케냐에서 게를 수입해 떼돈을 벌었지만, 배가 소말리아 해적에 나포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며 잠시나마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지만, 농부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재기했다. 이제 그는 농가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돈 되는 농업’에 힘 쏟고 있다. “스위스나 뉴질랜드처럼 젊은 인재들이 농부가 되고 싶어 하고, 농부들이 아르마니(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입을 수 있는 풍요로운 농업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를 초당 옥수수 수확이 한창인 경남 밀양에서 만났다.

-초당 옥수수를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는데.

“최초라고 확실하게 입증하지 못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초당 옥수수를 국내 주류 시장에 최초로 선보이고 확산시킨 건 맞는다. 2012년 일본 식품 박람회에서 보고 가능성 있겠다 싶었다. 미국에서 종자를 사다가 재배해 2013년 처음 선보였다.”

-첫해에는 반응이 시원찮았다던데.

“완전 망했다(웃음). 소비자들이 ‘초당’을 두부로 유명한 강원도 초당으로 오해해 판매가 거의 안 됐다. 시식 요원을 배치해서 설명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시 자금이 부족했다. 시식 반응도 좋지 않았다. ‘이게 무슨 옥수수냐, 쫀득하지 않고. 아삭아삭한 게 여물 아니냐, 이상하다’고 했다.”

-그럼 언제부터 초당 옥수수가 인기를 얻었나.

“첫해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초당 옥수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으로 노력했다. 한입 씹었을 때 ‘맛있다’ 할 수 있도록. 다음해인 2014년 블로그 공동 구매 등 온라인으로 홍보하면서 빵 터졌다.”

-새로운 작물·품종을 끊임없이 소개하는 이유는 뭔가.

“부친이 고향 의성에서 평생 마늘 농사를 지으셨다. ‘진짜 열심히 농사짓는데 왜 빚에 허덕일까?’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항상 머리에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가치를 창출하는 농업을 하고 싶었다.”

-자체 플랫폼 ‘퍼밀’에서 판매하는 초당 옥수수 등 농산물 일부를 계약 재배 방식으로 수급하는데.

“농가에 종자를 주고 농사짓는 법도 알려드리고 농자금도 일부 지원한다. 농가가 작물을 수확하면 전량 매입한다. ‘식탁이있는삶'의 농사를 농가가 대행하는 구조다. 농가는 생산을, ‘식탁이있는삶'은 판매를 전담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농민은 아무리 농작물을 잘 키워도 공판장에 가면 대충 키운 다른 작물과 비슷하게 취급받기 십상이다. 백화점 납품은 꿈도 못 꾼다. 이커머스도 싼 것만 찾으니 중간에 있는 벤더들은 저렴한 물건만 찾는다. 농가는 악순환을 겪는다. 신품종을 들여와 키워도 판로가 없다. 한국의 모든 농가를 먹여 살릴 수는 없지만, 도전할 의지가 있는 농가를 도와 잘된다면 다른 농가들도 변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농민들도 보조금과 수매에 기대서 노력하지 않는 부분은 변해야 한다.”

갓 수확한 초당 옥수수. 전자레인지에 3분쯤 돌리거나 생으로 먹어야 특유의 아삭하면서 수분이 팡팡 터지는 식감이 살아난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학 1학년 이른 나이에 농업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대학 진학해 서울에 와보니 동기들은 유학도 다녀오고 영어도 잘하고 좋은 차도 몰았다. 내가 뭘 더 잘할 수 있을까 절박했다. 그런데 얘들을 보니까 고추가 나무에서 크는지, 가지에서 크는지도 모르더라. 농업 관련 일을 하면 얘들보다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김 대표는 대학 1학년이던 2003년 고향 의성에서 흑마늘 공장을 운영하던 친구 아버지를 찾아갔다. 당시 흑마늘이 한창 주목받고 있었다. 그는 흑마늘을 팔아보겠다고 제안했다. 친구 아버지는 “그냥 너 먹어라” 하며 흑마늘 여섯 상자를 줬다. 김 대표는 국내 시장을 뚫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인맥이나 배경 없이 어렵지만, 해외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양화대교 보수 공사에서 막노동을 해 200만원을 모아 싱가포르행 비행기표를 구했다.

흑마늘을 들고 식품 박람회에 관람객 신분으로 입장했다. 손으로 쓴 홍보 전단을 나눠주며 박람회장을 누볐지만 마지막 날까지 아무 성과가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기적이 있어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꾸리던 김 대표에게 한국무역협회에서 전화가 왔다. 한 화교 사업가가 흑마늘을 구입하고 싶다는 것. 20만달러짜리 흑마늘 수출 계약이 맺어졌다.

김 대표는 대학 동기들과 농산물 저장·유통·판로 개척 등의 사업을 하는 회사를 2008년 차렸다. 꽤 돈을 모은 김 대표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잡히는 ‘골든시크랩’이 러시아산 킹크랩보다 20분의 1로 저렴하면서 품질도 우수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당장 케냐로 건너가 선주(船主)와 ‘미금호’ 계약을 맺고 게를 수입해 들여왔다.

-골든시크랩으로 엄청 돈을 벌었다고.

“난리가 났다. 매주 컨테이너 3~4개에 시크랩이 가득 담겨 한국에 들어오면 보세창고에서 다 팔렸다. 러시아산 킹크랩은 마리당 10달러 정도였는데 케냐산은 마리당 0.5달러였으니까. 컨테이너당 2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거뒀다.”

-그런데 ‘미금호 나포 사건’이 2010년 10월 발생했다.

“다 끝장이 났다. 무너지는 건 순간이더라. ‘언제든 돈 갖다 쓰라’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돌변했다. 그렇게 많던 사람이 모르는 척했다. 압류와 압박, 협박이 쏟아져 들어왔다. 국내 사업도 동시다발로 엎어졌다. 대기업에서 담당자가 바뀌었다며 대량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명 넘던 직원 모두 떠났고, 6억원 넘는 빚만 남았다. 사람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커서 도저히 한국에서는 일 못 할 것 같았다. 외국 이민 절차를 밟기도 했다.”

-농가들 도움을 받았다던데.

“대규모로 농사짓는 농가 몇 분이 ‘김 대표 다시 일어서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신들이 키운 배추·고구마 등 농산물 5억~6억원어치를 조건 없이 내줬다. ‘지금 빚도 많아서 갚지 못할 수 있다’며 거절하자 ‘어려울 때 한번 돕고 싶다. 다시 일어서라’며 격려해줬다. 이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1년 반 만에 재기했나.

“대파하고 마늘을 매집했는데 대박이 나버렸다. 가격이 오를 것 같아서 도박을 걸었다. 쌀 때 사서 저장해놨는데 4~5배 뛰어버렸다.”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과거를 돌아보며 스스로 반성했다. 법률, 회계 관리 등 회사를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끌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초당 옥수수 같은 신품종 특성화 작물처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답이라는 확신도 얻었다.”

-준비 중인 새로운 작물이나 신품종이 있나.

“국내에서 가장 단 신품종 감자가 나온다. 국내 감자 육종가가 개발했다. 보통 감자가 갓 캤을 때 3~4브릭스이고 저장하면 당도가 높아져 6~7브릭스쯤 된다. 우리 감자는 캘 때부터 7~8브릭스이고 저장하면 12~13브릭스까지 나온다. 흔히 찐 감자를 설탕 찍어 먹는데, 이 감자는 그냥 먹어도 달다. 생으로 먹어도 아리지 않다. 전남 강진에서 밭 8000평을 빌려 농가에 월급 주고 위탁 재배 중이다. 오는 11월 처음 수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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