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복수를 꿈꾸는 자여 '조너선 콜리어'를 마셔라
'용서받지 못한 자'와 위스키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도 있지만 미국은 여백으로 이해해야 한다. 광막한 땅덩어리에 흩어져 외롭게 사는 얼기설기한 공동체, 그게 바로 미국이다.
아무래도 서부 영화에 이런 미국의 본령이 잘 담겨 있다. 황량한 여백 같은 개척지에 점점이 자리 잡은 이들이 행간의 여백이 가득한 대사를 툭툭 던진다. 이런 정서가 유독 생각날 때 나는 ‘용서받지 못한 자’(1992년)를 보고 또 본다.
1880년, 황량한 와이오밍주의 개척 마을 ‘빅 위스키’에서 난동이 벌어진다. 카우보이가 매춘굴의 작부 얼굴을 온통 칼로 그어 놓은 것. 엄하지만 영웅 심리에 젖은 보안관 리틀 빌(진 해크먼)이 상황을 정리하지만 작부와는 무관하다. 재산 손상의 명목으로 매춘굴의 포주인 스키니(앤서니 제임스)에게만 망아지로 보상을 명령했을 뿐이다.
인간 이하 취급에 절망과 분노를 느낀 작부들이 전 재산을 털어 모은다. 그리하여 카우보이 일당의 암살에 현상금 1000달러를 내건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2만6400달러, 한화 3000만원쯤 된다.
이런 난동과 현상금 소식을 캔자스의 총잡이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알게 된다. 어설픈 젊은 총잡이 스코필드 키드(제임스 울벳)가 허허벌판에 사는 그를 찾아온 것이다. 머니는 카우보이들을 함께 처리하고 현상금을 챙기자는 키드의 제안을 거절한다. 한때 위스키에 절어 무법자로 살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 덕분에 손을 씻었다고 답한다. 하지만 키드가 떠난 뒤 자신의 어려운 현실을 재삼 파악한 머니는 아이들을 두고 무법자 시절의 단짝 네드 로건(모건 프리먼)을 찾아 함께 빅 위스키로 향한다.
머니는 약간의 곡절 끝에 작부에게 상처 입힌 카우보이와 동료를 처리하지만 큰 대가를 치른다. 살인을 못하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던 네드가 리틀 빌에게 잡혀 고문당하다가 사망한 것이다. 매춘굴 앞에 네드의 시체가 본보기로 전시되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듣자 머니는 끊었다던 위스키를 들이켜고는 다시 빅 위스키로 향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매춘굴 1층에 있는 바(bar)로 찾아가 포주 스키니와 리틀 빌, 수하 보안관들을 전부 사살한다.
무법자가 법 집행관에게 사적 복수를 행하다니 께름칙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는 수정주의 서부 영화이다. 어차피 무법천지인 서부 시대에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지 않냐는 물음을 던진다. 통쾌하게 복수하는 가운데 머니가 들이켜는 위스키는 한없이 달콤해 보인다. 그래서 미국 위스키가 생각난다면 마침 영화에는 아주 훌륭한 안주거리도 있다. 바로 위스키의 설정 오류이다.
머니가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난다는 암시를 주는 장면에서 ‘조너선 콜리어(Jonathan Collier)’라는 위스키가 등장한다. 조너선 콜리어는 허구의 위스키이지만 흥미롭게도 이스트우드의 다른 영화 ‘헌팅 파티(Hang’em High)’에도 등장한 바 있다. 허구의 브랜드라서 문제가 아니라, 쓰이는 병이 영화 속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옥의 티다. 당시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글씨를 돋을새김한 유리병을 쓰지 않았다.
위스키의 세계는 크게 미국산(産)과 영국 스코틀랜드산으로 양분된다. 보리를 쓰는 스코틀랜드에 비해 옥수수로 빚는 미국 위스키의 단맛이 좀 더 날카롭다. 바닐라 향도 미국산이 스코틀랜드산보다 두드러진다.
미국 위스키는 켄터키와 테네시가 주요 산지다. 켄터키 지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는 ‘버번(bourbon)’이라 일컫는다. 버번 중 이름난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가 대형 마트에서 6만원대 중반(750mL 기준)에 판매된다. 테네시 위스키 가운데서는 록밴드 ‘건스앤드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가 즐겨 마시는 ‘잭다니엘스’가 대형 마트에서 3만원대 중반(용량 500mL 기준)이다. 물론 복수가 통쾌하고 위스키가 달더라도 과음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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