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의 토요일엔 에세이] 집세 지옥.. 그는 주차장에서 잠을 잔다
아카데미 감독상과 여우 주연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의 원작 ‘노마드랜드’(엘리)는 자본주의 미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이다. 미국은 경쟁적인 사회다. 치열한 경쟁은 차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인다. 하지만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은 어떤가?
‘노마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긍정적 의미로 쓰였다. 많은 자기 계발서가 안주하지 말고, 정착하지 말고, 진실을 찾아 달리는 노마드가 되라고 했다. 이제 노마드는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월세를 내지 못해 주차장에 세워진 트레일러와 밴에서 잠을 청하는 떠돌이를 말한다. 부랑아는 언제나 있었지만 이들 상당수는 한때 중산층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들개처럼 이리저리 내몰리는 노마드에게는 징표가 있다. 바로 빠진 이다. 치과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민이 3분의 1이 넘는 미국에서 고르고 하얀 이는 사회적 상징이 되어버렸다. 카메라를 들어 포즈를 잡아달라고 할 때 노마드들은 웃지 않는다. 빠진 이를 보이기 싫어서.
아마존이 쇼핑 성수기에 만드는 단기 일자리를 찾아 많은 노마드가 아마존 주차장으로 몰려든다. 이 일자리는 시간당 임금이 조금 높은 대신 무척 고되고 몹시 지루하다. 첨단의 아마존이지만 이 일자리 대부분은 끔찍할 정도로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라 하루에 10시간 이상 16㎞에서 32㎞를 걷게 된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 제시카 부르더는 판지 상자에 맞아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한 후에도 24㎞를 다시 걸어야 했던 스타우트란 남성에 대해 썼다.
각 가정에는 끊임없이 청구서가 날아온다. 사람들은 임금을 받자마자 식료품 구입비를, 의료 비용을, 신용카드 사용 금액을, 공공 요금을, 학자금 대출과 자동차 할부금을 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액수가 큰 집세를 뺀다.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노마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현실을 붉은 눈동자로 지켜보다가 죽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옥도에서 주차장이란 자유 공간으로 탈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탈출하자마자 깨닫게 된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에서 어떤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게 무엇인지 얘기하려면 이 책의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르더는 이렇게 적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이다. 우리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이나, 희망이 필요하다.” 김동조·글 쓰는 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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