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근원' 바다를 해치는 어리석음의 끝은

강구열 2021. 6.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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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44억 4000만년 전 바다 생성 추정
5500만년 전 최초의 영장류도 등장
자신을 낳아준 바다로의 여행 시작
인류의 바다 학대 증거 '해양 쓰레기'
해마다 바다·호수에 2000만t 버려져
절반인 1000만t이 '플라스틱 폐기물'
CO₂ 배출량 증가로 지구 온난화 심각
"무모한 훼손은 인류 위협 부메랑될 것"
여섯 번째 대량절멸 우려 목소리 커져
연간 바다, 호수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200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쓰레기로 오염된 바다는 생물종 고갈, 먹이사슬 교란, 지구 온난화 등을 초래하며 인류 생존의 위협이 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바다의 시간/자크 아탈리/전경훈 옮김/책과함께/1만5000원

엄마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는 걸 아는 아이가 엄마에게 독을 먹여 천천히 죽어가게 한다면….

앞뒤가 전혀 맞질 않는 상상이지만 현실이어서 끔찍하다. 어마어마한 지구의 역사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바다가 낳은 가장 뛰어난 자식이 인간이지만, 그 뛰어남은 무지, 횡포와 동전의 양면이 되어 바다를 죽여가고 있다. 생명의 근원을 스스로 해치는 어리석음이 초래할 최악의 결말은 대량절멸이다.

“이로써 2억5200만년 전에 등장했던 현생 생물 종의 90%가 사라질 수 있다.…학대당한 바다는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할 것이므로 인간 또한 사라질 것이다.”

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기도 하는 자크 아탈리는 “매우 길고도,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바다의 ‘총체적 역사’를 정리한 뒤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바다가 생긴 최초의 시간에서부터 학대당한 바다의 치명적 역습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가까운 미래까지를 거침없이 내달리며 “인류가 바다는 물론 바다와 관련이 적은 분야에서도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라야 바다는 구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생명의 역사를 시작한 바다가 형성된 것은 대략 44억4000만년 전이다. 41억년 전에서 38억년 전쯤에는 살아 있는 최초의 존재, 원핵생물이 등장했다. 4억4000만년 전 절대적인 혁명이 일어난다. 대기에 생물이 살 수 있을 만큼의 산소가 충분해지자 식물이 물 밖으로 나왔다. 바다 탈출의 첫 동물은 파충류였다. 3억5000만년 전이다. 5500만년 전 최초의 영장류가 등장했고, 2000만년 전 영장류는 유인원으로 진화했다.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에 이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이어졌다.

그리고 인류는 자신을 낳아준 바다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따뜻할 때는 생명의 요람이었으며, 차가울 때는 죽음의 위협”이었던 바다를 향해 최초의 인류는 “장래의 어떤 탐험가보다도 더 큰 용기를 품고 스스로를 파도에 내맡겼다.” 6만년 전 최초로 장거리 이동을 하게 된 이후 바다는 늘 삶의 터전이자, 발전의 원동력이었고, 역사를 가름하는 결전의 장소였다. 바다를 근본으로 한 문명의 발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자크 아탈리/전경훈 옮김/책과함께/1만5000원
문제는 지금의 바다다. 지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종인 인류는 생명의 근원인 그곳을 학대하고 있다. 한쪽은 다른 한쪽을 끝내버릴 수 있다. 끝나는 쪽이 바다일 리는 없다. 아탈리는 “바다에서 생명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경고의 근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해양생물이 뚜렷하게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부터 들여다보자. 2050년이 되면 지구는 적어도 90억명의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농산물로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바다 먹거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미 다랑어, 상어, 대구 같은 대형어류의 90%가 사라졌다. 급격하게 감소한 바다 먹거리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대체할 수는 있다. 2030년이면 인류가 소비하는 물고기의 3분의 1만 바다에서 나올 것이라고 한다. 당장 먹을 수야 있겠으나 이런 현실에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 해안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도 문제다. 이는 바다와 육지의 오염, 경작 가능한 토지의 훼손, 수원지 부족과 취약성 강화 등을 초래한다.

해양 쓰레기는 인류가 바다를 상대로 벌이는 학대의 가장 뚜렷한 증거다. 해마다 바다와 호수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2000만t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이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은 절망적이기만 하다. 이런 일들이 해양생물에게 가져온 결과는 처참하다. 우선 산소가 부족한 이른바 ‘죽음의 구역’이 생겨난다. 빛이 투과하지 못해 식물의 광합성이 불가능해지고, 그 결과 산소가 줄어들어 발생하는 현상이다. 2017년 남태평양, 발트해, 벵골만 등에서 400곳이 넘는 죽음의 구역이 보고됐다. 미세 플라스틱은 먹이사슬 전체를 관통하며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유럽에서 소비되는 물고기의 28%, 굴과 홍합의 3분의 1이 미세 플라스틱을 포함하고 있고, 유럽인 한 명이 홍합과 굴을 섭취하면서 연간 1만1000개의 미세 플라스틱을 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온난화를 빼놓을 수 없다. 바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0%, 인간 활동에 의해 촉발된 기온 상승량의 93%를 흡수한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늘면서 이를 흡수하는 바다의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러니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서기전 1년부터 18세기 말까지 280ppm을 유지했으나 지금은 400ppm을 넘어서 지난 300만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바다의 탄생부터 가까운 미래까지의 시간을 들여다본 아탈리는 인간이 타깃이 된 여섯 번째 대량절멸을 걱정한다. 생명은 진화하고, 확산하기만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량절멸을 겪었다고 한다. 4억5000만년 전 심각한 빙하기가 찾아왔고, 바다에만 존재했던 전체 생물의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최초의 대량절멸이었다. 6500만년 전 공룡을 지구에서 지워버린 다섯 번째가 지금까지는 마지막이다.

지금의 지구에는 대량절멸의 조건들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탈리의 판단이다. 그 중심에 바다가 있다. 그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현안은 바다인가. 싸워야 할 싸움을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바다를 위한 싸움을 선택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물론, 그렇다”라는 대답과 함께 이렇게 확신한다.

“인류에 대한 위협 중에는 지구적 한계치 내에서 유지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이 한계치들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바다 자체와 바다가 겪는 폭력에 좌우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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