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20대 남자들이 화난 이유

최규민 디지털724팀 차장 2021. 6.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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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혜택 누린 586
정의로운 척 선심까지 쓰면서 부담은 왜 뒤 세대에 미루나
‘이남자’는 그 대답을 원한다

지금까지 기성 정치인들 눈에 20대, 특히 20대 남성은 무시의 대상이었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20대에서 유독 낮게 나오는 이유에 대해 “기본적으로 교육 때문”이라며 “이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학교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20대는 4050보다 역사 경험치가 낮아 지금만 보니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가 쓴맛을 봤다.

재보선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20대의 정치 세력화를 목격한 이후 20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에는 ‘경계심’이 추가됐다. 요즘 ‘진보’ 진영에서 제기되는 ‘이준석=트럼프’론이 이런 심리를 담고 있다. 역사상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2030세대가 이준석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졸지에 ‘레드넥’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레드넥은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하층민을 비하하는 용어로, 주로 미국 남부에서 육체 노동에 종사하며 목 주위가 벌겋게 달아올라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남성을 레드넥과 비교하는 건 전제부터 잘못됐다. 실질적인 기득권을 누렸던 미국 백인 남성과 달리, 한국의 ‘이남자’들은 기득권이란 걸 구경도 못해봤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018년 한 강연에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왜 유독 낮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20대 남자들이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는 군대도 가야 하고 여자들보다 특별히 뭐 받은 것도 없는데, 자기 또래 집단에서 보면 여자들이 훨씬 유리하죠. 선생님은 학교에서 대놓고 여자애들만 끼고 돌고 남자애들은 함부로 대하고…. 이렇게 자라온 아이들이 ‘사회에 성차별이 있는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닌데, 오히려 우리는 자라면서 그런 거 없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이러니까 정서적으로 반발할 수 있다고 봐요.” 이 발언 도중 “남자들은 축구도 보고 롤(컴퓨터 게임)도 해야 한다”는 말이 부각돼 비난받았지만, 그의 진단은 20대 남성들의 박탈감의 근원을 꽤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남자’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건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 혜택을 누렸던 기성세대가 뜬금없이 내미는 ‘연대 책임론’이다. 조국백서 공동저자 중 한 명은 586에 만연한 이런 시각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에 넌더리를 내는 20대 남성들에게 “왜 너희들은 남성 우월 사회에서 단물 다 빨아먹고 우리한테 이러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지만, ‘단물 총량의 법칙’ 정도로 이해하라”고 했다. “차별을 젊은 세대 남자들이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이 (병역 등) 차별을 겪어야 하냐”는 질문에 “뭐 어쩌겠나. 지난 과거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멍에였듯, 딱 이 시점에 남성으로 태어난 것을 탓할 수밖에”라고도 했다. 가부장제 혜택은 586이 누리고, 정의로운 척 선심도 586이 쓰는데, 그 빚은 왜 젊은 남성들이 짊어져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2030 남성들은 대통령과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해왔지만, 돌아온 건 “허허, 재미있는 의견이군요” 같은 공허한 답변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집권 초 열렬했던 지지를 철회하고 이준석과 야당을 대안으로 택했다. 그러므로 그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정부와 여당이 젊은 남성들의 마음을 다시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너희들 마음을 다 안다”고 외치고, 해외여행비 1000만원을 주고, 걸그룹 댄스를 춘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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