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소방대장, 어깨수술 받고도 장비 메고 뛴 그였다

이천·광주/조철오 기자 2021. 6.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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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 이틀째 진화… 실종된 구조대장 수색작업 못해
경기도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현장에 후배 직원 4명을 이끌고 발화(發火) 지점 등을 찾고자 투입됐던 김동식 구조대장

1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광주소방서. 소방 차량이 출동한 1층 한쪽에 개인 보호 장비를 보관하는 선반이 보였다. 공기호흡기와 방화복, 헬멧 등이 칸마다 빼곡히 놓여 있었지만, 한 공간이 비어 있었다. 하루 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고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다 실종된 김동식(53·소방경) 구조대장의 자리다. 함께 출동했던 대원들은 복귀해 소방 장비를 놓고 갔지만, 김 대장은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방서 2층 구조대장실은 급히 출동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데스크톱 PC가 켜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A4 용지 등이 흩어져 있었다.

화재 발생 이틀째인 이날 오후 큰 불길은 잡혔지만, 건물 내부는 가연성 물품이 불에 타며 뿜어대는 연기로 가득한 상태다. 강한 불길에 장시간 노출된 건물 골조가 무너질 수도 있어, 소방관들의 내부 진입은 불가능한 상태다.

김 대장은 지난해 1월부터 광주소방서 구조대를 이끌었다. 대원은 3개 팀, 18명. 그는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지난 17일 오전 9시 출근했다. 근무조인 1팀과 오전 10시 30분쯤 현장으로 향했다. 먼저 진화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김영달(소방위) 2팀장이 “지하 2층 화기(火氣)가 세다. 진입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김 대장에게 말했다. 그는 “지하 2층은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진압 당시 철제 선반들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불길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화점(火點)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김 대장은 이날 오전 11시20분쯤 후배 소방관 4명과 함께 지하 2층으로 진입했다. 맨 앞에 서서 대원들을 이끌었다. 하지만 선반에 쌓여 있던 의류와 상자 등이 무너지면서 불길이 다시 거세졌다. 무전으로 “대피하라”는 긴급 탈출 지시가 내려졌다. 그는 맨 뒤에서 팀원들을 챙기면서 지나온 통로를 되짚어 나오려 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최대 50분 동안 숨 쉴 수 있는 산소통을 메고 들어갔지만, 현장 투입 30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온 1팀 대원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한 소방관은 “대장님이 돌아오시길,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죄송하다. 대장님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도 있었다.

지쳐가는 소방관들 - 18일 경기도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진화 작업을 벌인 소방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화재 발생 이틀째인 이날 오후 큰 불길이 잡혔지만, 가연성 물품이 불타며 뿜어대는 연기로 내부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실종된 김동식 구조대장은 현장 투입 30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19일 건물 내부 안전을 점검한 뒤 수색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고운호 기자

후배 소방대원들은 “대장님은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앞장섰던 선배”라고 했다. 구조대장이 모든 사고 현장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아도 되지만, 그는 특히 험지(險地)일수록 앞장서 뛰어들었다고 한다. 소방관들은 “상황이 더 어렵고 위험할수록 현장 경험이 많은 고참이 나서는 것이 119구조대원의 불문율이고 자부심”이라고 했다.

김 대장은 지난해 7월 21일 13명의 사상자를 낸 용인시 처인구 양지SLC 화재 현장에서도 구조 활동을 펼쳤다. 어깨 수술을 받고 한 달간 병가(病暇)를 낸 뒤 복귀해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직원들의 만류에도 그는 “현장에 대원들만 남겨둘 수 없다”며 나섰다고 한다.

김 대장이 이끄는 광주소방서 구조대는 최근 소방기술 경연대회에 참가해 ‘최강 소방관’ ‘구조’ 등 두 종목에서 입상했다. 사고 바로 전날 열린 구조 종목에선 오는 10월 열리는 전국대회 본선 출전 자격을 얻었다. 김 대장 책상 옆에는 지난해 대회 때 촬영한 단체 사진이 걸려 있었다. 3년 차 백승구(32) 소방관은 “대장님은 ‘구조 대원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며 현장에서 하나씩 가르쳐주셨던 분”이라고 했다.

김 대장의 가족들은 이날 화재 현장에서 불길이 꺼지지 않은 물류센터를 바라보며 가슴을 졸였다.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나온 듯 슬리퍼를 신고 나온 이도 있었다. “당분간 내부 구조 작업이 어렵다”고 소방 관계자가 말했지만,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이들은 사고 현장 인근 119센터에서 대기하며 ‘기적’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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