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에서도 몰카 걱정" 도 넘은 디지털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에 피해자들 고통만 더욱 커져
불법 촬영물 '긴급삭제명령' 등 제도 정비를
국내 성범죄 중 불법 촬영 관련은 2008년 4%가량에서 2017년 20%로 급증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들은 법적 대응을 할 때 큰 벽에 직면한다고 토로했다. 수사 담당자들이 신고 접수를 거부하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성관계 사진을 올린 남성을 고소하려 했더니 수사관이 “가해자의 변호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이라며 사건 취하를 종용했다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처벌도 솜방망이여서, 2019년 검찰이 디지털 성범죄를 불기소한 비율이 43.5%에 달했다. 지난해 불법 촬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가해자의 79%는 집행유예나 벌금형 수준이다. “가해자는 멀쩡하게 직장에 다니고 피해자만 어둠 속으로 숨어야 한다”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피해 영상이나 사진을 온라인에서 지우기 어려운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혔다.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추가 피해를 막으려 촬영물을 빨리 없애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원 기관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피해자가 수백만 원을 들여 민간업체에 의뢰하는 일이 늘고 있다. 민사소송으로 가해자에게 촬영물을 삭제토록 하거나 손해 배상을 청구하려 해도, 형사소송이 끝날 때쯤이면 트라우마에 시달린 피해자가 지쳐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이 단체는 피해자가 법원에 신고하면 12시간 내 삭제토록 강제하는 ‘긴급 삭제 명령’ 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는데, 정부가 서둘러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7년간 남성 1300여 명의 나체영상을 녹화·유포한 이른바 ‘제2 n번방’ 피의자가 최근 검거되는 등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는 남녀 구분 없이 발생하고 있다. 미성년자가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빈발하는데, 청소년들이 범죄가 아니라 일종의 놀이로 인식한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보고서는 국내 모든 학교와 직장에서 성에 대한 인식 및 디지털 권리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을 하라고 강조했다. 이를 수용해 교육부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고 젠더 폭력이나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융합 성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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