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05] '사이'에 대하여
깊은 산속에서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 기묘한 경계로 이루어진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찍힌다. 흥미로운 건 숲속의 소나무, 녹나무 같은 나무들이 자라면서 꼭대기 부분이 상대에게 닿지 않는 현상인데 이를 수관 기피라고 한다. 수령이 비슷한 나무들은 자라날 때 옆 나무의 영역으로 침범하지 않는다. 이른바 나무들 사이의 거리 두기인 셈이다. 식물학자들은 수관 기피를 공간을 겹치지 않게 확보해, 뿌리 끝까지 햇빛을 받아 동반 성장하기 위한 식물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타인과 적당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적당함의 기준이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나 온도를 말하느냐는 것이다. 나무들의 수관 기피 현상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림태주는 ‘관계의 물리학’에서 “좋아하는 사이는 거리가 적당해서 서로를 볼 수 있지만, 싫어하는 사이는 거리가 없어져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사이가 있어야 모든 사랑이 성립”하고 “사이를 잃으면 사랑은 사라진다”. 즉 “사랑은 사이를 두고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지 존재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코모레비’라는 일본어가 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라는 뜻인데, 잎들 사이로 흩어지게 바람이 만든 햇살은 과연 생각만으로도 아름답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이 짧은 칼럼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사이’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의 ‘사이’와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간다. 인간이라는 단어도 한자로 사람 ‘인’과 사이 ‘간’을 쓴다. 좋은 관계를 ‘사이좋다’고 표현하는 건 또 어떤가. 좋은 사이란 뜨겁게 가까운 거리도, 차갑게 먼 거리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36.5도의 따뜻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무수한 사이에 겨우 존재하는 것이다. 겨울과 봄 사이, 밤과 아침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 이해와 오해 사이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 그 무수한 사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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