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돈쭐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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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난한 소년이 책을 사보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소년은 서점 쇼윈도 너머로 책 한 권이 펼쳐진 걸 보고 가까이 다가가 읽었다.
소년은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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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밤 일본 삿포로의 우동집 ‘북해정’에 한 어머니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우동 1인분을 주문했다. 안쓰럽게 여긴 주인은 1인분에 반 덩이를 더 넣어 우동을 삶았다. 세 모자는 한 그릇을 오순도순 나눠 먹었다. 이들은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같은 자리에서 우동을 나눠 먹었고 주인은 몰래 우동을 더 넣었다. 그 이후 주인이 섣달그믐이면 자리를 비워 놓고 기다렸으나 모자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10여년 만에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가게를 찾은 어머니는 주인의 친절에 감사를 표한 뒤 우동 세 그릇을 시켰다.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의 줄거리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서울에서 실제 일어났다. 망원동의 소년가장 A군은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일곱 살배기 동생과 살고 있다. 지난해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수중에는 5000원밖에 없었다. 동네 치킨 가게에 들러 5000원어치만 줄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형제는 수제치킨 ‘철인7호’ 홍대점 앞에 서성거리다 주인과 눈을 마주쳤다. 주인은 푸짐한 치킨 세트와 콜라 두 병을 대접하고는 형제를 내쫓듯 가게 밖으로 내보냈다. 주인은 그 후에도 동생을 불러 공짜로 치킨을 먹이고 머리까지 깎아주었다. 치킨 가게의 미담이 뒤늦게 알려지자 주인을 ‘돈쭐(돈으로 혼쭐)’내주자며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주인은 수익금을 불우이웃 성금으로 쾌척했다. 서울시는 18일 가게 주인에게 표창장을 주었다.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에게 늘 부족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온정이다. 우동 한 그릇, 치킨 하나 내밀 수 있는 따스한 손길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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