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정약전과 흑산도 사촌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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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정순왕후 수렴청정 기간에 이루어진 대표적인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박해로 인하여 정약용(1762~1836)과 정약전(1758~1816) 형제는 유배길에 올랐다.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에서 실학을 완성한 스토리는 많이 알고 있지만, 당시 함께 유배를 가서 흑산도에 머물렀던 정약전에 대해서는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자라는 정보만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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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흑백으로 영상을 처리한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되면서 정약전과 함께 흑산도 청년 창대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주변의 각종 해양생물의 명칭·분포·형태·습성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 서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저술해, 조선 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저술로 평가를 받는다.
정약전은 책의 서문에서 “나는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보았다. 그 목적은 어보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昌大)라는 사람이 있었다. (…)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대체로 직접 듣거나 본 초목과 새와 물고기는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 함께 묵으면서 연구하고 차례를 매겨 책을 완성하고 ‘자산어보’라 하였다”고 하여, ‘자산어보’의 저술에 창대의 도움이 컸음을 기록하고 있다.
정약전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책을 집필한 공간은 흑산도 사리 마을의 사촌서실(沙村書室)이다. 정약용은 강진에 있으면서 형과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촌서실에 대해서는 “내 형님 손암(정약전) 선생께서 머나먼 남녘 조그마한 섬인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지 7년이다. 그곳의 어린아이 대여섯 명이 형님을 따라 서사(書史)를 배웠다. 형님은 이미 초가집 두어 칸을 짓고 사촌서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기록했다. 사촌서실은 사촌서당, 복성재(復性齋)라고도 불리며, ‘자산어보’의 산실로 기억되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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