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SG 경영, '생명 존중 일터' 만드는 일부터

한겨레 2021. 6.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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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업재해 청문회'에 나온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은 산재 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따져보니 '안전하지 않은 작업자의 행동' 탓이 컸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과실이 있든 없든, 산재 사고는 기업의 부실한 안전 관리 탓이 크다.

큰 성과를 일군 원동력은 기업이 노동자와 함께 사고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안전·보건 역량을 높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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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여전히 "산재 원인은 근로자 탓"
사회적 책임의 첫째 항목 '노동자 안전'
이젠 '살인기업' 오명 스스로 벗어날 때

지난 2월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업재해 청문회’에 나온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은 산재 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따져보니 ‘안전하지 않은 작업자의 행동’ 탓이 컸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그런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기업에서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회사에선 1974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한달에 한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일터가 아니라, ‘작은 전쟁터’ 같다. 중소기업들의 산재 사고에 대한 인식도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월 500개 표본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응답 기업의 56%가 ‘근로자의 부주의 등 지침 미준수’를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노동자의 과실이 있든 없든, 산재 사고는 기업의 부실한 안전 관리 탓이 크다. 사고는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위험한 작업을 강요하거나 방치하고 있다. 작업장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안전 교육을 하는 건 기업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

그동안 산재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가벼웠던 것이 기업의 ‘안전불감증’을 키웠다. 지금도 법원은 사망에 1억원을 기준으로 위자료를 판단하고 있다. 기업간 거래에서도 안전은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 중소기업 열에 여덟은 납품단가에 안전 관리 비용이 별도로 반영돼 있지 않다고 한다. ‘위험의 외주화’가 사고로 이어지는 고리다.

물류센터 화재 사고 이틀째를 맞은 18일 오전 쿠팡 물류센터노동조합이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 현장에서 억울한 죽음을 막자는 움직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종이호랑이’가 된 중대재해처벌법의 보완을 위한 개정 운동은 그 일단일 뿐이다. 이 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친환경(E), 사회적 책임(S), 지배구조 개선(G)이 기업 경영의 핵심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는 요구는 사회적 책임의 맨 앞자리에 있다. 그런데도 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되레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우고 있다”며 국회와 정부에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ESG 경영’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가 우리나라의 10분의 1에 그치는 영국은 2007년 ‘과실치사법’을 도입하고, 이듬해부터 ‘이해 관계자 참여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진했다. 큰 성과를 일군 원동력은 기업이 노동자와 함께 사고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안전·보건 역량을 높인 것이다. 정부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앞장서야 하는 것은 역시 기업이다. ‘살인 기업’이란 오명을 기업 스스로 벗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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