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죽은 약자들 달래는 퇴마사, '부동산 달걀귀'를 봉인하다

한겨레 2021. 6. 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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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의 캐릭터 세상][윤석진의 캐릭터 세상]
⑤ '대박부동산' 홍지아
<대박부동산> 홍지아. 한국방송 제공

경제적 약자에게 주거 공간은 생존의 문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는데도 자기 소유의 집에서 거주하는 비율이 60%에 못 미치는 현실은 주거 불안정으로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투자라는 명목하에 아파트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집 없는 사람의 불안 심리는 공포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참사’가 말해주듯이, 주거와 도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하는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들은 주거 생존권을 위협받으면서 죽음으로 내몰렸다. “아파트 준다고 했잖아요. 내 아파트 내놔요!”라던 <대박부동산>(한국방송2) 속 영매에 빙의된 원귀의 절규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지난 9일 드라마 종영 뒤에도 귓가에 맴돈다.

‘귀신 들린 집 매매 전문’ 대박부동산에 20년 동안 머물고 있는 퇴마사 원귀의 사연도 재개발 사업과 무관하지 않다. 아파트를 준다는 건설업자의 꼬임에 넘어간 판자촌 철거민이 방화를 저질러 수십명이 사망했다. 퇴마사 원귀는 그 원혼들이 한데 섞여 달걀귀로 나타나면서 발생하는 재앙을 막으려고 퇴마에 나섰다가 죽어 원귀가 됐다. 드라마 주인공인 홍지아(장나라)는 원귀의 딸이자 모계 혈통을 잇는 퇴마사다. 귀신 들린 집을 전문으로 중개하면서 억울하게 죽어간 원귀를 위무하고 애도하며 저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홍지아가 찰랑거리는 긴 머리를 틀어 올려 꽂은 ‘귀침’을 뽑아 원귀가 빙의된 영매의 심장을 찌르면 원귀는 저세상으로 간다. “칼 꺼내는 거면, 그거 하지 마. 어차피 그 칼에 다치는 건 너야”라면서 건장한 체격의 깡패들을 간단히 제압할 정도의 무술 실력을 자랑한다. 그는 퇴마사 일이 원귀를 보내주는 데까지라고 선을 그으며 냉담한 척하지만, 원귀는 물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독일 정도로 속내가 깊다. 퇴마 일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미움, 원망이 지긋지긋해서 모른 척”하려 해도, “퇴마란 건 원혼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 그 사람들도 살아가야 하니까”라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며 실천하는 천생 퇴마사다.

홍지아가 퇴마를 통해 저세상으로 보내준 원귀들은 대부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약자들이다. 철거 현장에 투입됐다 죽은 용역반원, 빌라 분양 사기 피해로 죽은 세입자, 건물주 횡포에 가게를 뺏기고 살해당한 영세상인 세입자, 자식에게 짐 되기 싫어 목숨을 끊은 노인,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세운 담장에서 떨어져 죽은 초등학생까지. 그들은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주거지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회적 죽음 앞에서 홍지아는 위무와 애도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죽은 사람의 몫까지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대박부동산> 홍지아. 한국방송 제공

법과 제도에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의 원혼을 저세상으로 보내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홍지아는 퇴마가 끝나면 폭식할 정도로 지치면서도 결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영매도 없이 퇴마하다가 달걀귀에 홀려 죽은 엄마의 원귀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퇴마사 원귀를 보낼 수 있는 특출한 영매를 만나지 못해 노심초사하던 그는 귀신 들린 집에서 사기 행각을 벌이던 오인범(정용화)의 영매 능력을 확인하고 끌어들인다. 오인범이 20년 전 판자촌 철거 당시 건설업자 도학성(안길강)의 꼬임에 넘어가 방화를 저지른 삼촌 때문에 희생된 원혼들의 달걀귀가 빙의되었던 어린 영매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갈등한다. 자신이 엄마의 심장에 귀침을 꽂았다는 진실을 목도하고 충격에 사로잡히지만, 엄마의 원귀가 자신의 집착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인범의 도움으로 퇴마에 성공한다.

정치권과 결탁한 도학성 회장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강제 철거를 시도하는 재개발 사업 현장은 경제적 약자에게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지옥이다. “옛날엔 하늘의 도움으로 큰 화재도 나고 그랬는데, 이제 회장님 끗발도 다 됐나 보네요”라며 도학성을 압박하는 국회의원의 말은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비극적인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홍지아는 도학성의 사주로 발생한 스카이빌딩 화재 현장에 달걀귀가 출몰하여 입주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20년 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퇴마에 나서 더 큰 희생을 막는다.

도학성이 돈 때문에 힘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살아 있는 달걀귀’라고 생각한 홍지아는 지명수배되어 쫓기다가 죽은 그의 원귀를 뼈가 녹아내리는 불길 속에 봉인한다.

도학성은 봉인되었지만, 주거 생존권을 위협받는 경제적 약자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안정화 정책을 아랑곳하지 않는 부동산 시장에는 이대로 영영 자기 소유의 집을 장만하지 못할 것 같은 공포심이 섞여 만들어진 ‘부동산 달걀귀’들이 출몰하고 있는 것만 같다. 도학성을 봉인시킨 후유증으로 퇴마 능력을 상실했다가 1년여 만에 퇴마사로 복귀한 홍지아가 현실의 부동산 달걀귀들도 퇴마해줄 수는 없을까.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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