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그대 안의 붓다들에게

황주리 기자 2021. 6. 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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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화가

모두가 붓다 될 수는 없겠지만

마음속엔 누구나 자비의 씨앗

개신교 외할머니의 새벽 기도

그 힘이 쌓이고 쌓여 나를 키워

참된 종교는 악의 교훈서 나와

우리 안에 선한 마음 지녔으면

‘그대 안의 붓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오랜만의 서울 전시라 많은 지인이 와주셨다. 그중에는 꽃이나 케이크, 와인 등에 쪽지를 남긴 분들도 있었다. 전시 제목 때문인지 고마운 마음이 절로 우러나, 전시 기간에 나 자신도 지인들도 전시를 구경하러 온 분들도 모두가 자기 안에 밝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붓다 한 분씩을 모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쪽지는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지금은 시조시인이신 ‘최영균’ 선생님이 액자에 넣어 오신 긴 축하 시조다. ‘코로나 치유하는 일백 붓다의 자비심 그대 나 모든 이의 마음속에 평화행복 주시네’로 시작해 ‘청사에 빛날 수제자 황 화백 화필이여 오색구름 타고 비상하는 학처럼 빛나소서’로 끝을 맺는 액자 속의 긴 글에 코끝이 찡해 왔다.

중학교 1학년 시절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선생님은 그때만 해도 청춘의 방황이 시작되기 전의 모범생 중 모범생이던 제자를 기억하고 계셨다. ‘토요일 특활 시간에는 무거운 화구가방 들던 소녀 화가 황주리 양’이라는 구절에서는 그 시절의 단발머리 소녀가 앞에 걸어가듯 생생했다. ‘원만 관용 성실 불심의 모범 반장’이라는 구절은 과찬이라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자비심을 지닌 소녀였다는 뜻일 텐데, 내가 정말 그랬을까? 그 어린 나이에 불심을 지닌 뒤 나이 들수록 불심을 다 잃어버렸던 건 아닐까? 이제 와서 되찾겠다는 기특한 시도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일까?

붓다를 10여 년 그려온 건 종교적인 이유에서는 아니다. 모든 중생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법문을 다 믿을 수는 없다. ‘네가 곧 부처다’라는 말이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나 내게는 같은 말로 들린다. 물론 원수를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없고 누구도 원수를 사랑할 수 없으니 성인들이 위대한 거다. 그저 자신도 모르는 우리 안 붓다의 작은 씨앗이라도 찾아보자는 역설적 희망의 메시지가 전시의 내용이라면, 형식은 동양의 보석인 불상 이미지를 현대화해 모던 붓다로 재창조해 보려는 취지라고나 할까?

어릴 적 우리 외할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셨다. 아버지의 불면증 탓에 나는 한옥의 별채에서 외할머니와 한방을 쓰며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제일 처음의 기도는 할머니가 새벽녘에 일어나 하시던 긴 기도이다. 어린 날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며 들은 기도는 늘 가족의 평안에 대한 바람의 기도였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손녀딸이 늘 백 점 맞고 미술 실기 대회 나가서 1등을 하라는 내용으로 점철된 기도였다. 어쩌면 나는 할머니의 기도발로 오늘에 이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도가 쌓이고 쌓이면 영혼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힘이 된다. 청춘과부가 돼 그 모진 삶을 다 이겨내시고 97세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에게 교회는 의지할 만한 든든한 언덕이었다. 덕분에 나는 새문안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들어가 매일 주님께 기도하고,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권사이신 할머니 덕분에 숫기라고는 전혀 없는데도 예수 탄생을 그린 연극의 조연을 맡기도 했다. 숫기는커녕 유치원에만 가면 말문이 막혔다. 집에서는 안 그런데 유치원에만 가면 소통이 불가능했다.

졸업하던 날 장난꾸러기 둘이 슬며시 와서는 “너 바보지?” 했던 말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어릴 적 자신이 바보라고 굳게 믿었던 이들은 어른이 돼서는 살얼음판 걷듯 조심조심 잘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자신이 똑똑하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얼음판에서 넘어져 아예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나는 어릴 적 할머니 덕분인지 꿈에서 가끔 예수를 보았다. 하지만 신자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 이화여대에 들어가서는 채플 시간에 땡땡이를 많이 쳐서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에 관해 에세이를 쓰고 높은 점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가 사실은 가장 종교적 인간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후로도 나는 종교를 가진 인간이 되는 일에는 실패한 셈이다. 2008년 스리랑카에 모 방송사의 여행 프로그램 진행자로 갔다가 수많은 불상에 매료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어쩌면 작은 불성이나마 지니게 됐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악하며 동시에 얼마나 선한가? 오늘도 세상 어디선가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참된 종교는 인간의 악함이 불러낸 선한 교훈에서 비롯된 건지 모른다. 문득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아들에게 이건 현실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거라고,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영화 속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부처님오신날 절 앞에 모여 찬송가를 부르는 생각 짧은 소수의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꿔 보기로 한다. 예수님이 부처님께 생일 축가를 불러주시는 거라고. 일체중생인 그대 안의 붓다들에게 예수님이 생일 선물을 들고 오신 거라고, 그렇게 우리 모두의 안에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 한 자락 지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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