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만필] 의료현장에 필요한 건 '장겨울 선생'

여론독자부 2021. 6. 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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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외과, 수술 많고 처우 상대적으로 낮아
사명감만으로 선택 강요할 수 없어
십수년간 이어져온 필수의료과 기피
근본해법 마련위한 사회적 논의 필요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서울경제]

필자는 평소 드라마를 즐겨본다. 그중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얼마 전 시즌2를 시작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지난해 3월부터 약 석 달에 걸쳐 방영됐던 시즌1은 인간미 넘치는 의사들의 잔잔한 이야기로 많은 감동을 줬다. 매회 에피소드마다 재미와 감동이 있었지만 유독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은 레지던트인 장겨울 선생을 둘러싼 외과 의사들의 경쟁이었다. 소아외과·간담췌외과·대장항문외과 등 외과는 여러 개인데 외과를 지원한 레지던트는 오직 장 선생 하나다. 수술을 하려면 숙련된 보조 의사가 필요한데 레지던트가 장 선생뿐이니 여러 전문의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열심히 구애를 했다. 물론 드라마라 조금 과장한 부분은 있지만 실제로도 해마다 외과를 지원하는 레지던트들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 의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는 성형외과와 피부과다. 최근 10년에서 20년 사이 성형외과와 피부과에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의사들끼리 모이면 이런 현상을 두고 비정상적이라고 걱정하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을 쉰다.

병원의 근간이 되는 과는 메이저과로 알려진 ‘내외산소’이다.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를 일컫는 말이다. 내외산소가 균형 있게 발전하면서 특정 부위를 보는 일명 마이너과라고 불리는 성형외과·이비인후과·피부과 등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점점 메이저과는 나날이 위축되고 마이너과는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특히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위축된 데는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의사는 환자들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환자가 많은 과가 인기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의사들은 단지 환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전공 분야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필자의 경우 수술에 매력을 느껴 정형외과를 선택했다. 뼈가 부러진 부위를 절개해 뼈를 노출시키지 않고도 뼈 안에 기구를 넣어 정확하게 고정시키는 수술로 환자가 한 달도 채 안 돼 잘 걸어 다니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무엇보다 말기 관절염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입원해 인공관절 수술을 한 후 두 발로 걸어서 나가는 모습을 볼 때는 정형외과에 대한 로망이 더욱 커져만 갔다.

필자처럼 수술에 매력을 느껴 외과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생명의 근원인 심장 치료에 매료돼 전공을 선택한 의사들도 있다. 아마 의사들에게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면 저마다 열 가지는 족히 꼽을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전공을 선택했건 모든 과는 분명한 그들만의 존재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의료의 가장 근간이 되는 필수 의료 분야인 ‘내외산소’가 흔들리고 일부 인기 과만 비대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자가 자꾸 줄어 산부인과나 소아과를 전공하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과 진료를 병행하는 의사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외과의 경우 환자가 줄지는 않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수술을 필요로 하는 외과 환자는 대부분 대형 병원을 선호한다. 하지만 대형 병원에서 수용할 수 있는 외과 의사의 수는 한계가 있다. 대형 병원에 남을 수 없다면 개인 병원을 개원해야 하는데 의원급 병원에서 외과 수술을 하기는 어려우니 외과 지원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의 경우 외과 중에서도 더 기피하는 과이다. 수술 자체도 고난도이고 수술 후 밤을 꼬박 새우며 환자를 치료하는데도 상대적으로 다른 과 의사보다 처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심장 질환자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들이 계속 줄면 제때 수술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명감만을 앞세워 의사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제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필수 의료임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불안정해 외면하는 과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십수 년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자리걸음이다. 필자 역시 뾰쪽한 해결책을 내놓을 위인도 못 돼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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