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좋은 경제학은 이념에서 시작 안 해" 기본소득 주장 李지사 경청하길

조선일보 2021. 6. 18.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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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퇴치를 위한 실험과 연구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 MIT의 에스테르 뒤플로(왼쪽) 교수와 남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오른쪽) 교수 부부. /로이터 연합뉴스

빈곤 퇴치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네르지 MIT 교수가 본지 인터뷰에서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라면 기본소득의 보편 지급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케냐를 예로 들며 “복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나 보편적 지급 방식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의 소득 수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후진국에서나 기본소득이 유용하다는 뜻이다. G7 정상회의 초청국이자 세계 10위 경제국인 한국이 그런 나라인가.

바네르지 교수의 기본소득론이 느닷없이 한국 정치권에서 논쟁거리로 등장한 것은 여권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주장하면서부터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론이 나오자 “석학 바네르지 교수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데 (야당은) 이를 사기성 포퓰리즘이라고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바네르지 교수는 올 4월 경기도 주최 행사 때도 이 지사 면전에서 “기본소득이 사람을 더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지사는 국가 예산의 절반이 소요될 기본소득 구상을 자신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선거에 활용하려 한다.

이 지사를 비롯한 여권의 일부 세력은 기본소득을 만병통치약인 양 내세우지만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성공한 예는 단 한 곳도 없다. 핀란드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이 실업자나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다가 1~2년 만에 그만뒀다. 최빈곤국인 아프리카 나미비아가 금융위기 직후 2년간 NGO 모금으로 걷은 돈을 주민 900여명에게 줬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막대한 재원을 충당할 방법이 없는 데다 국민의 근로 의욕을 떨어트리는 부작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바네르지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좋은 경제학은 제대로 된 팩트 위에서 시작하지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이념 주도 경제 운영을 콕 집어 비판한 것처럼 보인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 격차가 심화됐는데도 문 정부는 “고용이 개선 추세” “성과가 나고 있다”며 현실을 부정했다. 집값을 역대 최악으로 올려 놓고는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했다. 좌파 정책이 무오류의 절대선이라는 이념적 착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문 정부는 정책 실패로 인한 국정 구멍을 세금을 퍼붓는 것으로 눈가림해왔다. 임기 4년 내내 이것만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근거가 희박한 단순 논리로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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