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4장에 땅콩버터와 포도젤리..이 버거 끝판왕 '단짠단짠' 인생 위로하네

최보윤 기자 2021. 6. 1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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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솔푸드는 햄버거일까. 차곡차곡 쌓인 고기 패티 사이를 흐르는 치즈와 땅콩 버터가 눈에 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인기인 선데이버거클럽의 '굿데이투다이' 버거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스푼 가득 입안에 넣고 맛을 음미하던 배우 브래드 피트의 얼굴은 천국이라도 다녀온 듯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혀를 진득하게 감아치는 감칠맛. 어떤 고통도 잠시 잊게 해주는 강력한 마법이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1998)에서 저승사자를 맡은 브래드 피트는 인간 세상에서 맛보는 행복을 땅콩 버터 한 스푼으로 치환했다. 비루한 삶에 치여 어느덧 잊고 지냈을 뿐, 각자에겐 뇌리에 박혔던 즐거운 순간이 있다.

토닥이며 잠을 재촉하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목말 태우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 아이의 탄생... 때로는 찰나가 영겁이다. 브래드 피트의 땅콩 버터 장면은 별거 아닐 거라 지나쳤던 순간이 결국은 삶을 지탱하는 이유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일부

영화 속에서 ‘단순해 보이지만 궁극의 맛’으로 표현된 땅콩 버터는 사실 미국의 암울한 시절을 증언하는 도구다. 1700년대 노예로 추락한 아프리카 흑인들이 미국 남부 지역에 경작한 대표적인 식물이 땅콩이다.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남부 연합군에게 지급됐던 식량 상당 부분은 땅콩이 차지했다. 고기가 아닌데도, 허기를 채우는 데 이만한 음식도 없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콘플레이크’로 유명한 존 하비 켈로그 박사가 1895년 땅콩 버터를 만드는 특허를 미국에 등록했을 당시 그는 땅콩에 대해 “약간의 소금을 가미하면 고기맛이 나는 데다, 버터나 다른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음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랬던 땅콩 버터가 포도젤리를 만나 미국인의 ‘솔(soul) 푸드’ ‘컴포트 푸드(위로하는 음식)’로 정착한 건 1901년. 음식연구가 줄리아 데이비스 챈들러가 보스턴 요리학교 매거진에 땅콩 버터와 젤리 샌드위치 레시피를 발표하면서 정착됐다. 저렴하면서도 배를 채우는 데 맛까지 좋아 대공황 시절은 물론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주식이 됐다. 미국에선 ‘땅콩 버터의 날’(1월 24일), ‘땅콩 버터와 젤리의 날’(PB&J·4월 2일)을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동안 햄버거는 주문 즉시 나온다며 ‘패스트푸드’로 불리고, 그럼에도 영양성분은 최악에 가깝다며 ‘정크푸드(쓰레기 음식)’이라 불리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분 격상이다. 육즙이 쏟아지는 질 좋은 고기에 신선한 채소 등을 넣어 매장에서 ‘조리’하는 모습은 고급 레스토랑 저리가라다. 스테이크 써는 대신, 식감은 최대한 살린 다진 고기 버거 패티를 써는 것이다.

육즙 가득한 패티에 이어 '비건' 패티도 버거의 인기를 돋웠다. 다운타우너의 '아보카도 버거'(다운타우너 제공) / 콩 패티가 들어간 쌀롱 딜리셔스의 ‘비건버거'(쌀롱 딜리셔스 제공)

이러한 변화는 수제 버거가 이끌었다. 미국에서 온 쉐이크쉑을 비롯해 이태원·청담·한남 ‘다운타우너’ 도산공원 ‘폴트버거’ 성수 ‘엘더버거’ 해방촌 ‘노스트레스버거’ 등 하루가 멀다고 수제 버거 맛집이 떠오른다. 재료의 신선도는 기본이요, 셰프의 ‘비법’은 수제 버거의 인기를 높인다.

최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2030에게 화제인 ‘선데이버거클럽’의 경우 패티 4장에 땅콩버터, 그레이프젤리로 ‘단짠단짠’ 맛을 냈다. 흔한 듯 보이는 것들이 모여서 만든 성찬이다. “미군 부대에서 ‘솔 푸드’로 꼽히던 샌드위치 비법을 버거에 재현했더니 색다르지만 익숙한 이 맛을 환영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그동안 두툼한 패티에 베이컨 등을 탑처럼 쌓은 일명 ‘내장파괴버거’가 화제였다. 그 못지 않게 차곡차곡 쌓인 패티 4장이 고기 마니아를 설레게 한다. 한 입 베어 무니 육즙의 풍미를 한층 살리는 치즈와 땅콩버터, 잼이 어울려 입안이 풍성해진다. 소셜미디어에서 ‘버거 끝판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맛집 앱 ‘식신’ 안병익 대표는 “수제 버거는 치팅(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이 하루 마음껏 먹는 것)과 건강 두 가지 영향으로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요즘 유행어로 과시이자 명품인 ‘플렉스(flex)’다. “총천연색 오감을 자극하며 육즙 팡팡 터지는 버거는 다이어트 때 최고의 ‘보상’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다는 점에서 ‘정크푸드’보다는 ‘건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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