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산의 기억
[경향신문]
1950년대 울릉도 풍경으로 갓 이은 듯한 초가지붕 한 채가 웅혼한 산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는 미루나무 두어 그루가 석양 햇살을 받고 반짝인다. 뒤로는 네 개의 산자락이 지는 햇살을 받고 몸을 안으로 접는 경건함을 보인다. 나무와 계곡을 끌어안는 간결한 어둠. 어쩌면 산은 도(道)와 같은 것이다. 보이면서도 다 볼 수 없는 것.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김근원(1922~2000)은 산악인이며 사진가이다. 그러나 스스로 산악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사진작가로 앞세우지도 않았다. 그는 한국전쟁 후 북한산의 아름다운 자태에 취해 첫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본격적인 산악인이 되어 험준한 산행을 이어갔으며 산악사진의 귀감이 되는 작품을 남겼다. 사진만이 목적이었다면 그토록 올곧은 사진의 깊이까지 가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산을 오르는 일이 목적이 아니며, 사진작가가 되는 일 또한 아닌 듯하다. 그의 발길은 산을 오르는 일을 즐겼고 사진을 찍는 일을 즐겼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김근원의 사진은 넓고도 깊다. 설악산의 비경과 아치, 한라산 백록담의 원시를 향한 설경, 결기 어린 독도, 지리산 정상의 운해 속에서 드러난 산봉우리의 물결.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한 국토 대장정의 과정들이 그의 손에서 생생하게 피어났다. 김근원은 한국 최초의 산악 사진가이면서도 그 장르를 넘어서고 있다.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산의 의지와 깊은 사유를 느낀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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