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민주주의 10개국 전략 연합
[경향신문]
지난 주말 영국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있었고, 한국은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국제기구의 수장들과 함께 초대되어 보건 및 무역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저개발국 백신공급을 위해 2년간 2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G7 정상회의는 중국의 홍콩 및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고, 대만해협 위기의 평화적 해결과 코로나19의 발생 원인 조사에 대한 협조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갑론을박이 가능하겠지만 이번 회의 참가는 한국 외교의 중장기 전략 수립과 집행에 여러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강국일 뿐만 아니라 선진 민주주의국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G7국가에 한국, 호주, 인도를 합친 10개국 민주주의 연합체(D10)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지 않을까 싶은데, D10전략 구상이 제안된 건 10년이 지난 일이다. 2008년 애틀랜틱 카운슬에 소속된 전직 미 국무부 관료들, 그중에서도 중장기 외교전략을 다루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제안됐다. 오바마 행정부가 천명한 미 외교·군사전략 중심축의 아시아 이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규칙에 근거한 민주적 질서”에 도전하는 권위주의 세력들,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동맹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민주주의 동맹 강화가 필수라고 본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탄력을 받게 된 것은 2012년 등장한 시진핑 체제의 ‘중국몽’ 선언이었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기치 아래 중화민족을 통일하고 현대화된 강군을 육성하며,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을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던’ 중국이 대놓고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천명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미국의 중국견제 전략의 일환으로 민주주의 10개국 전략 포럼이 2014년 처음으로 개최된다. 한국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G7 정상회의에 초대받은 건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아직 짧다. 지금이야 “아, 옛날이여~” 싶겠지만 1987년 6월항쟁은 직선제 개헌 투쟁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 이후로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도 없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국회해산권을 갖도록 했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도 잠정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도 부여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국민의 주권적 수임기관’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았는데, 1972년과 1978년엔 박정희를, 1980년 8월엔 전두환을 거의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이번 G7 정상회의에 초청된 것은 한국이 이제 권위주의 독재국가로 회귀하지 않을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공식 인정받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혹자는 그런 국제적 평판이 무슨 실익이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한국의 국제적 부담만 늘어나서 손해가 아니냐고. 하지만 기업이나 상품의 브랜드 가치가 시장에서 이익 창출에 도움이 되듯, 국가의 평판은 국가신뢰도와 연결돼 국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실제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그룹이 매년 발간하는 전 세계 부에 대한 통계를 보면, 2018년 이들 G7 국가의 순국부(총자산-총부채)의 합은 317조달러로 전 세계 부의 60%에 달한다. 이번 G7 정상회의 선언 조치들에 대해 중국 정부가 ‘소수그룹’에 의한 결정이라고 비난을 했지만 실제 경제력과 영향력에 있어서 G7은 여전히 중국, 나아가 세계를 압도한다. 물론 이런 국부 통계는 동태적인 역사적 추세를 봐야 하지만 G7이 상당 기간 중국의 강력한 견제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한국의 입장에서 관건은 G7이 D10으로 확대·재편될 가능성이 있느냐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G7 재편이나 회원국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과 다른 G7 국가들은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은 대서양과 인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민주주의 연합의 힘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일본의 뜻과 달리 G7이 D10으로 확대되는 건 머지않은 장래의 일로 보인다. 사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하는 좋은 전략은 이런 D10 전략 포럼 등 다자외교의 틀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편적인 합리적 논리로 주요국들을 설득해내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도 D10 전략 포럼에서 어젠다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외교전략의 지평을 전 세계로 넓히고 다자외교 능력을 한층 더 제고할 필요가 있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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