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더는 미룰 수 없는 '누구나 백신휴가'
[경향신문]
백신 접종 기사가 하루에도 수차례 검색 상위에 오르내린다. 전체 인구 대비 20.6%가 접종을 했으니, 잔여백신·예약접종 효과로 보인다. 초기에 비해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기대치가 국민들에게 더 작동한 것 같다. 전체 접종 대비 이상반응 신고율은 0.35%에 불과하지만 중대한 이상반응 우려를 종식시키진 못하고 있다. 통증이나 고열로 하루 이틀 고생한 사람이 적지 않기에 ‘백신휴가’ 정책 도입이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정부가 백신 접종 휴가 사용을 두 차례 권고(3월28일, 5월20일)한 바 있다. 그러나 예방 접종 불안반응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우리 사회가 신속히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 하루빨리 국민의 경제생활은 물론 개별 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적극적인 동참을 요청”했으나, 구속력 없는 권고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백신휴가 도입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불과하다. 일부 기업에서는 백신휴가 차별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차별적인 백신휴가는 기업 내 지배구조나 고용형태가 투영된 결과다. 실제로 A기업은 손자회사 직원에게, B기업은 구내식당 운영 담당 직원들에게는 각각 하루의 백신휴가만을 부여했다. 현실 구속력이 없는 정부 권고나 지침의 허점이 일터에서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나마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은 연차휴가 이외에 유급병가 제도가 있다. 이 때문에 백신 접종 후 2~3일의 회복기간 동안 휴가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급병가나 상병수당이 법제화되지 못한 국가 중 하나다. 실제로 유급휴가(62.9%)와 유급병가(46.4%) 적용자는 절반 남짓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10명 중 1명 정도만이 유급병가 적용을 받고 있다. 문제는 제도 밖의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는 백신휴가를 사용하고 싶어도 생계와 비용 문제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백신 접종 뒤 유급휴가를 주고, 정부나 지자체가 필요에 따라 사업주에게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급휴가 사각지대 개선의 진전된 대책으로 보인다. 택배기사나 방송작가와 같은 취약노동자들에게도 예산으로 유급휴가 지원이 가능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일단 상임위 문턱은 넘었으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남겨두고 있다.
몇몇 국가들은 유급병가 확대 강화를 통해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다. 자격요건 완화(핀란드·프랑스·호주)부터, 대기기간 일시 폐지(스웨덴·영국·프랑스)나 소득 대체율 100% 보장(독일·오스트리아)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에서는 ‘백신휴가’를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곳이 있다. 우리도 서울, 경기, 성남 등 일부 지방정부에서 유급병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국가가 백신휴가 제도 시행을 미루거나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백신 접종 세제혜택이나 접종 이후 여타 증상으로 인한 병가손실 지원을 검토해야 맞다.
사회공동체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회적 지향은 무엇일까. 코로나19 시기 화두였던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표현은 그 해답을 주었다. 하지만 국회 입법화 논의에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철학이 빈곤한 나라일수록 경제적 논리가 사회적 논리를 압도하기 마련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만큼은 비용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32조, 34조에는 이미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적용받아야 할 권리, 즉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이 적시되어 있다. 재난안전기본법 개정 이후 감염병도 사회적 재난에 포함되었고, 국가는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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