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목표가 생겼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현실
[경향신문]
청소년드라마는 흔히 학원물로 불린다. 10대가 주인공인 드라마 대부분이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다. 물론 여기서 학교는 1차원적 배경만은 아니다. 청소년을 보호하는 울타리이자 동시에 그들의 꿈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감옥이며, 더 나아가 당대의 현실을 비추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묘사된다. 학교는 그렇게 청소년드라마 속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굳건히 존재해왔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드라마에서는 이 같은 학교의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교육 기능은 말할 것 없고 검열의 기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학교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 무기력하게 서 있을 뿐이다. 학원물의 신기원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 넷플릭스 <인간수업>이 대표적 사례다. 꿈은커녕 당장 생계를 위해 범죄자가 된 고등학생 지수(김동희)에게, 학교는 범행을 감추기 위한 알리바이일 뿐이다.
<인간수업>보다 한 해 앞서 방영된 <17세의 조건>(SBS)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서연(박시은)과 민재(윤찬영)를 성장으로 이끄는 것은 학교가 아니다. 학교에서 볼 때 그들은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성실한 학생들이다. 하지만 그 내면은 폭발 직전의 불안으로 가득하다. 조건 만남으로 용돈을 받고 죽음을 생각하는 서연, 과외교사로부터 불법적인 제안을 받고 혼란에 빠진 민재에게는 정답을 알려줄 존재가 없다.
지난달 MBC에서 방영된 <목표가 생겼다>는 아예 학교가 등장하지 않는 청소년드라마로 눈길을 끈다. 주인공 소현(김환희)과 윤호(김도훈)는 모두 학교 밖 청소년들이다. 즉 <목표가 생겼다>는 그동안 이 장르에서 조명받지 못한 10대들을 다루며 ‘청소년드라마는 곧 학원물’이라는 공식을 깬 획기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작품의 소재도 차원이 다르다. 입시경쟁, 친구와 사제 간의 갈등과 같은 학원물의 전통적 소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소현과 윤호를 둘러싼 현실은 전쟁터에 가깝고,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방치된 그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하다.
특히 소현의 현실은 더욱 어둡게 그려진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퇴한 소현은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도 방임이라는 폭력에 고통받아왔다. 부친은 사고로 사망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진 모친은 소현을 학대했다. 학교 밖 청소년이자 집 밖 청소년인 소현은 빠르게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목표가 생겼다>는 소매치기가 된 소현이 친부라고 생각되는 남자 재영(류수영)을 만나고 그에게 복수를 꾀하는 과정을 그린다. 꿈도 희망도 없던 소현에게는 가정을 버린 친부의 행복을 빼앗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됐다. 작품의 제목은 기존의 청소년드라마에서 진학, 진로 등의 자기계발적 의미를 담았던 ‘목표’의 허상을 의도적으로 비꼬고 있다.
또 다른 학교 밖 청소년 윤호는 소현과는 정반대 성격의 인물이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부모 없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환경은 소현과 같지만, 윤호가 삶을 대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는 배달 아르바이트로 치매 할머니를 부양하는 성실한 노동자이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서슴없이 손을 내미는 선한 소년이다. 소현의 입체적 캐릭터에 비하면 전형적인 ‘모범 소년’의 틀에 갇혀 있으나, 그동안의 청소년드라마가 학교 밖 청소년을 문제아로 그려온 맥락 안에서 보면 다르게 읽힌다. 실제로 학교 밖 청소년을 가장 괴롭히는 고민 중 하나가 편견과 낙인임을 생각할 때, 바르고 곧은 윤호의 캐릭터 설정은 매우 유의미하다.
행정안전부와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교 밖 청소년 수는 평균 24만74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학령인구가 매년 10만명 이상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학교 밖 청소년의 비율만 지속적으로 증가 중이다. 하지만 ‘학생이 아닌’ 청소년은 여전히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모든 일상을 뒤바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관련 기사에서도, 비대면 수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 대한 우려 외에 다른 청소년 문제를 다룬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청소년드라마에서 학교 밖 10대를 거의 조명하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현실 인식에 비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말로 엇갈린 반응을 얻기는 했지만, <목표가 생겼다>는 청소년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호평받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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