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본소득과 조삼모사 윤형중씨에게 반론한다
[경향신문]
오세훈 시장과 이재명 지사 간에 안심소득과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던 6월2일, 나는 이에 대한 관전평(‘안심소득과 기본소득, 오해와 진실’)을 경향신문에 기고하였다. 내 글이 불편했던지 이 지사는 ‘조삼모사’라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이 지사 쪽 교수들의 신문 투고도 줄줄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노벨상의 권위에 기대려다 망신을 당하기도 하였다.
지난 6월 11일에는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의 윤형중씨가 ‘기본소득과 안심소득 온당한 비교를 하려면’이라는 글을 경향신문에 기고하여 내 글을 비판하였다. 윤씨는 내 비교가 온당치 않은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안심소득제에는 재원마련 방안이 없는데 내가 안심소득제를 마이너스 소득세로 오인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나는 안심소득과 기본소득을 재분배 효과와 재원 규모라는 두 가지 잣대로 비교했는데 양 제도의 순비용의 합은 같기 때문에 내 비교는 착시라는 것이다. 내 글에는 오인도 착시도 없다. 윤씨야말로 내 글의 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본인 자신의 말이나 예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윤씨의 두 번째 주장부터 검토해 보자. 윤씨가 얘기하는 ‘순비용’은 ‘순조세’를 말한다. 즉 납부한 세금에서 받은 소득보조액을 차감한 액수를 말한다.
나는 기고문에서 갑, 을, 병 세 사람의 시장소득이 <0, 100, 500>일 때 안심소득이 시행되면 A=<50, 100, 450>이 되고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B1=<25, 112.5, 462.5>가 되거나 B2=<50, 125, 425>가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순조세를 계산해 보면 A의 경우 <-50, 0, 50>이고 B1에서는 <-25, -12.5, 37.5>이며 B2에서는 <-50, -25, 75>가 되어 모든 경우 순조세의 합은 항상 0이다. 윤씨는 순조세의 합이 같기 때문에 안심소득과 기본소득의 효과는 같은 것이고 내가 주장한 ‘다름’은 ‘착시’라는 것이다. 정작 착각은 윤씨가 하고 있다. 나는 걷은 세금의 합이 지출된 소득보조액의 합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예제를 그렇게 만든 것뿐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재정중립성’이라고 하는데 윤씨가 이걸 두고 착시 운운하니 어이가 없다. 순조세의 합은 동일하더라도 개인별 순조세는 모두 다르고 각 경우의 유효세율, 노동공급에 대한 효과, 후생(복지)효과, 세수효과도 모두 다르다. 더욱이 윤씨가 나에 대한 반박이라고 ‘추가적으로’ 만든 예제도 나를 반박하기는커녕 ‘선별과 보편의 대립은 겉보기일 뿐’이라는 나의 주장을 재차 확인해 주는 예일 뿐이다.
내가 ‘부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이 지사의 주장을 ‘조삼모사’라고 한 이유는 바로 ‘순조세’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소득보조액만 고려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이야말로 본인들이 ‘재정환상’에 빠져 있든지, 아니면 국민들을 재정환상에 빠트려 정책을 집행하겠다는 것 아닐까?
이번에는 윤씨의 첫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윤씨에 의하면 안심소득제에는 재원마련 방안이 없으므로 결과는 A=<50, 100, 450>이 아니라 A’=<50, 100,
500>이다. 그런데 재원마련 방안이 없기는 이 지사 쪽도 마찬가지이다. 고작 예산 절감(단기)이나 조세감면 축소(중기) 정도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B1’=<17, 117, 517>이거나 B2’=<50, 150, 550>이 되고, 애석하게도 분배효과는 재정중립성을 가정한 경우보다 더 ‘악화’된다.
기본소득이 가성비가 낮은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큰 액수의 돈도 많은 사람들에게 쪼개어 주면 푼돈밖에 안 된다는 것은 국민들의 기본상식이다. 나는 전 국민에게 일인당 월 4만원의 푼돈을 무차별적으로 나눠주기 위해 25조원의 국가예산을 ‘탕진’할 수도 있다는 이들의 대담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25조원이 적절하게 사용되면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실질적 자유’가 박탈당해도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은 보편과 선별의 차이도 ‘왜곡’한다. 보편은 획일지급이 아니라 누구라도 ‘필요가 발생하면’ 차별 없이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산층과 부자도 복지확장에 동의하는 것이다.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한 푼도 지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보편성을 위배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충분한 액수의 보험금을 받기 위한 것이다. 사고를 판단하는 데 행정비용이 약간 든다는 이유로 사고 유무와 관계없이 매달 일정액의 푼돈을 돌려받을 거면 보험이 왜 필요하나? 내가 보편급식에 찬성하는 이유는 내 아이가 필요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질 좋은 점심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 밥 한 숟갈과 멸치 한 마리가 전부인 저품질 ‘기본도시락’을 모든 아이들에게 획일적으로 나눠주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세몰이로 과학적 검증을 이길 수는 없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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