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환경도 건강도 돈도 챙겨주는 채식
[경향신문]
나는 운 좋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2019년에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로 유학을 다녀왔다. 20년 기자직을 그만두고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로 요리 유학을 떠나기 전에 내가 세웠던 목표의 하나는 이탈리아식 채식을 배우는 거였다. 나는 고기를 가급적 먹지 않으려는 플렉시테리언이었지만 완전 채식(비건)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 후 당연히 나는 인턴을 채식 레스토랑에서 하고 싶다고 학교에 부탁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채식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원하던 실습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진로 상담을 했던 ICIF의 직원은 나에게 “미안해.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직 고기를 좋아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실제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의 고기 사랑은 남다르다. 점심시간에 피에몬테의 주도인 토리노 시내를 걷다보면 이탈리아식 소고기 육회인 ‘바투타 디 비텔로’를 시켜 먹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고기 애호국’인 이탈리아에서도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다. 로마 소재 정치사회경제연구소(EURISPES)에 따르면, 이탈리아 채식인구는 2015년 5.9%였지만 2020년에는 8.9%로 늘었다. 엄격한 채식을 하는 비건도 같은 기간 0.2%에서 2.2%로 늘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생햄과 치즈로 명성을 날려온 이탈리아마저도 채식 인구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코로나19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육류 대신 식물기반(plant-based) 음식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소비자뿐 아니라 음식 공급자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일레븐 매디슨 파크가 지난 10일 코로나19로 닫았던 식당을 19개월 만에 다시 열었다. 이곳은 2017년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1위에 오른 최정상급 식당이다. 그런데 영업을 재개하며 이곳은 모든 메뉴에서 동물성 재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음식을 제공한다.
셰프인 대니얼 험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식당이 문을 닫은 동안 직원 몇명과 팀을 꾸려 전염병에 신음하는 뉴욕 시민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이상 레스토랑 산업이 과거와 같은 패러다임으로는 지속 가능한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식물 기반’ 메뉴라는 새 길을 찾기로 했다. 그는 “식물성 재료로 예전처럼 만족할 만한 요리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라며 “하지만 식물 기반 요리의 놀라운 가능성을 모든 가정과 우리의 도시 그리고 지구와 함께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올해 초 미쉐린 가이드 영국과 프랑스 편은 처음으로 그린스타 레스토랑 각각 23곳과 33곳을 선정했다. 그린스타는 유서 깊은 채식 레스토랑은 물론 채소와 가축을 직접 재배해온 식당에 부여된다. 레스토랑 소개 전문업체인 미쉐린 가이드마저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채식을 ‘개인적 신념’ 혹은 ‘일시적 유행’쯤으로 가볍게 치부해선 안 될 것 같다. 시장이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대신하는 대체육 생산 기업인 미국의 비욘드 미트는 코로나19 쇼크가 시작되었던 지난해 3월 중순 주가가 57.99달러였지만 16일에는 147.63달러로 2.5배 올랐다. 또 세계 최대의 귀리우유 생산기업인 노르웨이 오틀리 그룹은 지난달 말 나스닥에 상장했고, 주가는 보름 만에 60% 이상 상승했다. 지난해에 견주면 회사 가치는 6배나 커졌다. 이 제품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출시됐으나 채식시장이 성장하면서 주목받아왔다.
코로나19로 미식은 물론 일상적인 식탁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변화의 최전선에서 채식은 환경과 건강 그리고 돈마저 챙겨주는 일석삼조의 트렌드로 식탁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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