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포럼] 삶의 속성과 공인

파이낸셜뉴스 2021. 6. 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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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 짐은 당신을 알지 못하오.

일상의 업무는 던져버리고 오로지 일탈에만 몰두하는 폴스타프의 삶은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영원히 축제 속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폴스타프처럼 규율에서 해방되어 본능과 무질서라는 욕망을 추구하는 행위 또한 엄연히 우리 삶의 한 축이다.

그 선택이 공인으로서 불가피한 것이라 해도 삶의 속성을 배제하는 그를 전적으로 옳다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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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 짐은 당신을 알지 못하오. 기도나 하시오. 광대나 바보 역할에 백발노인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소. 많이 먹어 배가 나오고, 늙고 비속한 그런 사람을 짐은 오랫동안 꿈속에서는 보아 왔소만, 그러나 이제 깨어나고 보니 그 꿈을 경멸하오…. 만약 짐에게 가까이 오려 한다면 목숨이 달아날 줄 아시오. ('헨리4세, 2부')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4세, 2부'의 말미에 일탈의 상징 폴스타프는 옛 친구 할 왕자가 헨리 5세로 등극하는 대관식 행진에서 갓 즉위한 왕이 지나가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는 할 왕자를 향해 "할 국왕 만세. 내 귀염둥이!"라고 축하 인사를 보내며 예전처럼 대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친구처럼 지내던 폴스타프에게 할 왕자는 안면몰수하고 앞으로는 그와 결별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할 왕자는 얼마 전까지 폴스타프 일행과 도둑질을 하거나 술집을 전전하는 등의 방탕한 생활로 아버지 헨리 4세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천하의 말썽꾸러기였다. 놀랍게도 그러한 할 왕자가 폴스타프를 매몰차게 거부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사에 몰입한다. 왕자 시절 그가 왕자임을 알면서도 그에게 법을 엄정하게 집행했던 대법관에게 그 중책을 다시 맡기고, 나라의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줄 것을 당부할 정도다.

일상의 업무는 던져버리고 오로지 일탈에만 몰두하는 폴스타프의 삶은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영원히 축제 속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폴스타프가 추구하는 놀이는 환상에 지나지 않아 일상의 업무를 외면한 휴일은 지속되기 어렵다. 일상은 일과 휴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바람직하다. "일 년 내내 노는 날이 지속된다면, 노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이나 지겨울 거야. 휴일은 간간이 찾아와야 기다려지거든"이라고 왕자 시절 할 왕자가 말한 것처럼.

폴스타프처럼 규율에서 해방되어 본능과 무질서라는 욕망을 추구하는 행위 또한 엄연히 우리 삶의 한 축이다. 자연인이 아닌 국왕으로서 책무를 수행하려면 사적인 영역을 배제해야 함 또한 당연하다. 폴스타프를 거부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당연하며 명분은 있으나, 폴스타프 식의 세상살이 방식은 완전히 축출되어야 할까. 또 그러할 수 있을까. 폴스타프를 거부하고 오로지 국사에만 몰두하는 그의 일상은 너무나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할 왕자의 아버지 헨리 4세는 리처드 2세의 왕위를 불법적으로 찬탈했다. 그 업보로 인해 당시 영국의 정치상황은 왕권의 정당성을 둘러싼 갈등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할 왕자는 나라의 안정을 위해 폴스타프를 추방하는 초강수를 둔다. 그 선택이 공인으로서 불가피한 것이라 해도 삶의 속성을 배제하는 그를 전적으로 옳다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사적인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할 왕자의 모습이나 오로지 본능의 영역에서 놀이의 삶을 영위하는 폴스타프의 모습을 상정해보는 것 또한 매우 비현실적이다. 인간은 여러 상호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여 서로 갈등하며 타협하고 성장해 가는 흠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어느 한쪽만을 편들지 않는 듯하다. 둘의 대립과 갈등은 상호 보완적이며 당연한 삶의 모습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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