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역외 조세회피에 공동 대처하는 G7

여론독자부 2021. 6. 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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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다국적기업 최저세율 15% 부과
세수 좀먹는 탈루, 줄일 길 열려
법제화 논의과정 쉽지 않겠지만
공정한 세계 향한 중요한 첫걸음
[서울경제]

최근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다국적기업의 해외 자회사들이 현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최저 15% 세율을 부과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이고 왜 중요한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거대 다국적기업인 애플을 예로 들어보자. 애플은 지구촌 전체에 거미줄 같은 지사망을 구축했다. 세계 각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애플은 자사 제품을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대신 주로 중국에 있는 제조사들과 생산 계약을 체결한다. 애플이 올리는 수익의 대부분은 특허권·상표·브랜드와 영업 비밀 등 무형자산에서 나온다.

세금을 내기 위해 애플은 어디에인가 수익을 보고해야 한다. 이 말은 세금을 어디에 보고할지 애플이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애플은 아일랜드처럼 세율이 낮은 국가를 선택한다.

지난 2014년까지만 해도 역외 세금 보고는 지금보다 훨씬 허점이 많았다. 애플은 해외 수익의 상당 부분이 아일랜드에 있는 애플세일즈인터내셔널에서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이 회사는 실체 없는 유령 회사였다. 그러나 2015년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압력과 아일랜드의 세법 개정으로 애플은 무형자산의 대부분을 아일랜드에 있는 자회사로 돌려놓았다.

서류상으로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은 실질적인 변화가 거의 없음에도 애플의 조치가 나온 후 무려 25%나 증가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아일랜드 전설 속 요정을 빗댄 ‘레프러컨 경제학(leprechaun economics)’이라고 불렀다.

애플은 다국적기업의 지위를 악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유일한 기업이 아니다. 아일랜드 역시 최악의 조세회피처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버몬트주와 인구수가 비슷한 룩셈부르크는 3조 달러 이상의 해외 기업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미국 전체가 끌어들인 해외 기업 투자액과 맞먹는다. 물론 실질적인 투자는 거의 없다. 대신 룩셈부르크는 많은 해외 다국적기업들이 실제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그들이 올린 영업이익을 신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국제 조세 체계가 다국적기업들에 방만한 세금 회피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각국이 벌이는 법인세율 인하 경쟁은 개별 국가들이 자국의 일자리 증가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 유치와 거리가 멀다. 세금 인하가 실제로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고용을 확대하도록 유도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들의 관심은 어디에 영업이익을 보고해야 세금을 줄일 수 있느냐에 집중된다. 하지만 세율이 낮아지고 조세 회피가 기승을 부리면 세수는 계속 떨어지기 마련이다.

1960년대 기업 이익에 대한 연방세는 평균적으로 GDP의 3.5%였다. 현재 이 수치는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간 5,000억 달러의 세수가 줄었다는 얘기다. 이 정도면 기반 시설 구축과 아동 보육에 소요되는 예산을 충당하고도 남는다.

G7 재무장관 회의의 합의 사항으로 돌아가보자. 15%의 최저세율은 어떻게 부과될까.

국제적 조세 회피의 중요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가브리엘 주크만은 이렇게 말한다. 아일랜드에 영업이익을 신고하는 독일의 다국적기업이 5%의 실질금리를 적용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앞으로 독일 정부는 이 기업으로부터 10%의 세금을 추가로 징수해 전체 세율을 15%로 끌어올린다. 독일의 다국적기업이 버뮤다·싱가포르 등지에서 올린 수익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15%의 최저세율을 부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조세회피처에 수익을 신고함으로써 탈루하는 세액을 줄일 수 있다. 또 조세회피처를 제공하는 국가들에 제공되는 인센티브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대기업들이 모회사를 조세회피처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주요 경제국들이 그 같은 꼼수를 손 놓고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자본에 유리한 반면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짜인 시스템을 고치려는 시도의 시작이다.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지 않는 한 소득세·급여세와 판매세를 피해갈 도리가 없다. 반면 소수 자본가들이 소유한 다국적기업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세율이 낮은 지역을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숙련된 회계사뿐이다. G7이 합의한 것은 바로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아직은 G7 재무장관들의 합의가 전부일 뿐 중요한 각론은 앞으로 차차 마련해야 한다. 이를 법제화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기업들은 회계사들 외에 로비스트들까지 대거 고용해 강력히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G7 재무장관 합의는 분명 대단한 쾌거다. 보다 공정한 세계를 향해 내딛는 중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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