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개, 떡 한봉지, 고추장 한병..우리 동네 '공유냉장고'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경향신문]
경기 수원시에는 음식을 넣어놓는 사람도, 보관된 음식을 가져가는 사람도 제한 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유냉장고’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골목 어귀나 식당 또는 상점 입구 등에 주로 있는 이 특별한 냉장고에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17일 찾은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주택가 골목.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곽상희씨(49)는 이날도 반찬을 넉넉하게 만든 뒤 친환경용기에 담아 식당 앞 공유냉장고(4호점)에 넣었다. 곽씨가 이날 만든 반찬은 오이무침, 진미채, 파무침 그리고 된장찌개와 국이다. 어림잡아 40~50여명이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양이다. 곽씨는 “식당을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께 반찬을 대접하자는 생각에 이 일을 하게 됐다”며 “2년 넘게 하다보니 동네 어르신들의 식성도 거의 다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유냉장고에 주민들이 넣어 둔 음식은 오전 11시(점심식사 전)와 오후 3시(저녁식사 전)가 되면 동이 나기 일쑤다. 주로 홀몸 어르신들이 반찬을 가져간다. 김모씨(84)는 “혼자 지내며 밥은 해먹어도 반찬까지 만들어 먹기는 쉽지 않은데 공유냉장고 덕분에 끼니 챙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며 “무엇보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의 한 카페 앞에도 공유냉장고(20호점)가 있다. 카페 주인 이윤경씨(53)는 냉장고 관리를 맡고 있다. 보관된 음식 상태를 확인하고 내부를 청소한다. 이씨는 “어느 날은 사과 한개, 고추장 한병, 떡한봉지가 놓여져 있고, 또 어떤 날은 택배기사가 음료수를 넣고 가기도 한다”며 “공유냉장고가 음식뿐만 아니라 따뜻한 마음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수원시에는 공유냉장고가 25곳에 설치돼 있다. 2018년 1월 권선구 고색동에 1호점이 생긴후 이처럼 늘어났다. 공유냉장고가 설치된 장소는 저소득층이나 노인, 다문화 가구 밀집 지역이다. 운영은 먹거리 공급부터 관리까지 식당 주인, 사회복지사, 교사, 커피숍 주인, 부동산 중개인 등 순수 민간자원 봉사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원시 등이 편성한 예산은 없다.
공유냉장고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만큼 음식물을 넣고 가져가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채소·식재료·반찬류·통조림 등을 비롯해 가공품·음료수·반조리식품·냉동식품 등은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기한 잔여일이 2일 이내인 음식물이나 주류·약품류·건강보조식품·불량식품 등은 냉장고에 넣을 수 없다. 다량의 음식물이 있을 경우 한사람이 한개의 음식물을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다. 음식물을 담아둔 유리병이나 재활용기는 반납해야 하고,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 사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공유냉장고는 서울, 대전 유성구 등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이날 인천 동구청도 5곳에 공유냉장고를 설치하는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공유냉장고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신뢰를 기반으로 추진중인 진정한 ‘거버넌스’ 사례”라며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 이웃과 정을 나누는 공유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인진 기자 ij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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