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편집인의 눈] 공짜 뉴스의 나라에서 뉴스 후원하기
김민정ㅣ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술집에서는 공짜 점심으로 손님을 끄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맥주 한잔을 주문하면 점심은 공짜, 이런 식이었다. 공짜 점심은 대부분 짠 음식이었고 목이 마른 손님은 자연스레 술을 더 주문하게 됐다. 음식 값을 충당하려고 술값을 비싸게 받는 가게도 있었다. 공짜처럼 보이지만 실은 숨겨진 비용이 있거나, 지금은 공짜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더 비싼 값을 치르게 된다는 교훈을 담은 속담이 생겨났다. “공짜 점심은 없다”.
포털과 언론사 누리집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공짜 뉴스’를 만드는 데도 비용은 든다. 총 5960개의 신문(인터넷신문, 주간신문, 일간신문)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 신문업계 전체 매출의 66.5%는 광고수익이다(‘2020년 신문산업 실태조사’).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언론사는 광고주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기 어렵고, 광고주가 선호하는 구매력 있는 소비자 계층의 시각을 반영한 기사를 쓰기 마련이다. ‘공짜 뉴스’를 핑계 삼아,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키려는 노력보다 돈 버는 일에 골몰하는 상업 언론도 늘어났다. 인터넷 기사 제목의 선정성을 비판한 ‘충격 고로케’ 사이트는 문을 닫았지만 클릭 수를 노리는 기사들은 건재하다 못해 활동 범위를 넓혀 성업 중이다. 광고를 기사처럼 포장한 ‘기사형 광고’도 문제인데,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119개 신문사, 잡지사를 심의한 결과 2019년 한 해 동안 나온 기사형 광고는 총 5517건에 달했다. 언론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기업 협찬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거나, 불리한 기사를 쓰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가는 언론사도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정확한 정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줬지만, 좋은 저널리즘이 살아남는 방안을 찾는 건 여전히 안갯속이다. <미디어 구하기>의 저자 쥘리아 카제는 비영리기관 모델을 제안했다. 뉴스를 ‘공공재’로 판단해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는 비영리기관으로 운영하고, 독자는 언론사에 기부하고, 정부는 기부자에게 소득공제나 세금 감면 혜택을 줘야 한다고 했다. 미국 비영리저널리즘 매체들의 연합체인 아이엔엔(Institute for Nonprofit News·INN)은 공공서비스 저널리즘은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보와 연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며칠 전 발표된 아이엔엔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미국 비영리저널리즘 매체 다수는 성장했다. 개인 후원금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지난달 서른세살이 된 한겨레는 세번째 친구 찾기를 시작했다. 김현대 대표이사는 ‘시민들이 주머닛돈을 털어 만든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가 ‘불안정한 대기업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경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주주·독자와의 거리도 멀어졌다’고 반성했다. ‘언론사로서도 언론으로서도 지속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고백에서는 절박감이 묻어났다. 좋은 저널리즘의 싹을 틔우기 위해 ‘국민주주’와 ‘신문독자’, 그리고 ‘디지털 후원회원’과 함께 걸어가겠다고 했다. 백기철 편집인은 이 여정의 열쇳말을 ‘신뢰, 소통, 콘텐츠’로 꼽았다. 한겨레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반성하고 분발하며, 한겨레의 벗들과 소통하고, 민주주의와 평화, 불평등 해소 등 한겨레가 지향해온 가치에 더해 기후변화, 젠더, 청년 등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담는 콘텐츠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한겨레가 ‘벗’과 함께 걷고자 하는 길은 ‘디지털 유료화’가 아니라 ‘디지털 후원제’다. 전자는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만 양질의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벽을 세우는 방식이다. 후자는 좋은 기사를 다 같이 읽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방식이다. 매달 1만원을 후원하는 벗 10만명을 모으는 것이 한겨레의 1차 목표라고 한다. 한겨레 기사가 훌륭하니 그 기사를 읽기 위해 돈을 내시라는 게 아니다. 한겨레가 지향하는 저널리즘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공짜 뉴스만으로는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힘들다는 걸 느끼고 있다면, 필요한 변화와 희망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뉴스 후원’이라는 생소한 길로 한 걸음 내디뎌주시면 좋겠다. 무한대로 공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나라지만, 결국 공짜 뉴스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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