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뒷조사, 1주에 1000만원 받을때도"..합법과 불법 줄타기
"1년에 불륜 조사만 100건 가까이 할 때도 있어요."
박민호씨(58)는 2009년 20년 넘게 몸담아 온 경찰을 떠나 탐정사무소를 열었다. 당시는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불법이어서 박씨는 '민간조사원'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의뢰인들을 만났다. 어느덧 12년차 탐정이 됐지만 박씨는 아직도 실종자 찾기에서부터 기업의 지적재산권 위반 사례 조사까지 다양한 사건을 조사한다.
박씨에 따르면 탐정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불륜 상대방을 쫓는 일명 '뒷조사'다.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불륜이 형사법상 처벌 대상에서는 제외됐으나, 여전히 민사상 불법행위로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탐정들이 수집해 온 남편(아내)의 불륜 증거들은 이혼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로 쓰인다.
박씨는 "불륜 사건 의뢰는 많게는 1년에 100건에 가까울 정도로 끊임없이 들어온다"며 "공무원 커플에서부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까지 1000쌍이 넘는 '불륜 커플'을 조사했다"고 했다. 또 "이혼소송에는 억대가 넘는 부동산의 재산분할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아 1주일에 1000만원이 넘는 의뢰비를 받을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도 불륜 사건이다. 박씨는 "자동차에 있던 불륜 커플을 처가 식구가 총출동해 돌멩이로 창문을 깨부수고 현장을 급습한 사건도 있고, 둘 다 배우자가 있는 동사무소 직원이 근무 시간에 밀회를 즐기다 덜미를 잡힌 적도 있다"며 "이런 사건일수록 탐정이 위법행위를 저질러 상대방에게 '역공'을 맞을 우려가 크다"고 했다.
박씨는 탐정의 가장 '돈이 되는' 업무도 불륜 조사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업무도 불륜 조사라고 했다. 불륜 사건을 의뢰하는 의뢰인들의 경우 심리적으로 내몰린 경우가 많고 사례비가 커 탐정들이 조사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기 쉽다는 의미다. 높은 성공보수를 받기 위해 불법 촬영·녹음도 불사하는 탐정들도 적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탐정 관련 민간자격증 중 하나인 민간조사사(PIA)를 취득한 인원은 지난해 8월 기준 4300여명이다. 탐정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거나 다른 협회에서 발급한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을 합하면 대략 1만여명 정도가 국내서 '탐정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을 규제할 일명 '공인탐정제도'는 커녕 통일된 윤리규정 등 최소한의 지침도 없다.
윤재옥·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탐정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으나 아직 21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허가를 받지 않은 탐정협회가 난립하면서 '돈만 내면' 누구든 탐정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한 탐정협회는 "120여만원을 납부하면 시험문제가 모두 나와 있는 기출문제집을 주겠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특히 탐정의 주 업무인 미행의 경우 스토킹에 해당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교육과 법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의뢰인의 개인정보를 역으로 의뢰인 협박용으로 사용하는 탐정들도 있다. 동업자의 신상을 알아내달라는 의뢰인에게 '경찰이 불법 뒷조사를 수사 중이다'라고 역으로 협박해 수천만원을 뜯어낸 탐정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박씨는 "국내 탐정들이 속칭 '흥신소'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진입장벽이 없는 탐정업 특성상 자격 미달의 탐정들이 성행하기 때문"이라며 "체계적인 수사 교육과 관리가 없다면 의뢰인들을 돕기 위한 탐정들이 되레 불법자를 대량 양성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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