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급등에 붕괴한 '일본 부동산 버블', 한국도 따라가나?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1. 6. 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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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불황 막기위한 저금리 정책이 버블 촉발시켜
사회갈등, 정치적 쟁점 되자 뒤늦게 급격한 금리인상과 대출규제로 버블 붕괴
펜데믹불황 막기 위한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의 끝은?

<일본 버블붕괴와 한국 주택시장의 미래=상>

일부 부동산 폭락론자들은 1980년대말 일본의 부동산 버블형성 과정이 한국의 집값 폭등과 유사한 만큼, 한국도 집값 폭락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도쿄 도심 3개구의 땅을 팔면 미국 전체토지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원인은 ‘불황’을 막기 위한 경기 부양용 저금리 정책이었다.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1986년 5%에서 1987년 2.5%로 급격하게 인하했다. 미국이 1985년 막대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일본에 강요한 ‘플라자 합의’에 따라 일본은 1985년 1 달러당 250엔을 1986년 150엔대로 급격하게 엔화 가치를 높였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수출기업들이 비명을 질렀고 실제 실질 GDP 성장률이 1985년 4.4%에서 1986년 2.9%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각종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일본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 공급을 확대한다. 저금리 대출경쟁까지 불 붙으면서 부풀려진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렸다. 86~89년 매년 주가와 부동산이 20~30%씩 치솟는다. 일본은 국토면적이 넓지 않기 때문에 절대 땅값이 떨어질 수 없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불 쏘시개 역할을 했다. ‘부동산이 최고야’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엔고 불황 막겠다는 저금리정책이 부동산 가격 급등시켜

저금리와 막대한 유동성이 일본의 자산버블을 키웠듯이 현재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전세계가 ‘펜데믹 불황’을 막기 위한 저금리, 양적완화, 보조금 정책이 자산가격을 급등시키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평가한 집값 거품 순위에서 한국은 19위 였다. 1위는 뉴질랜드이며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덴마크, 미국, 벨기에, 오스트리아, 프랑스 순이다.

당시 일본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도 토지거래 감시구역 지정, 대출 심사 강화 등 단계적인 조치만 취했다. 한국도 25차례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이고 유동성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집값 반값으로 낮추자”는 특집 방송을 연일 내보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방치한 정부와 일본 은행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도쿄의 일본은행(BOJ) 건물. 일본은행은 80년대 말 정책금리를 5%에서 2,5%로 급격하게 인하 자산버블을 촉발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금리인상과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로 버블붕괴, 일본은행의 실기?

부동산 가격 폭등이 사회갈등을 유발하면서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했다. 버블을 어느 정도 용인하던 일본정부는 여론에 등 떠밀려 부동산 대출을 사실상 틀어막는 ‘부동산 총량규제’ 제도를 도입한다. 버블의 절정기인 1989년 12월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 三重野 康)는 ‘인플레 없는 성장’을 주창하면서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다.

정부 요청으로 금리인상에 소극적이었던 전임총재와 달리 그는 “부동산 가격이 20% 정도는 떨어져야 한다”면서 2.5%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1990년 8월에 6%까지 올린다. 여기다가 1988년 바젤합의에 따라 은행들도 부동산 담보 대출을 줄이는 등 ‘삼각파도’가 부동산 시장을 덮친다. 부동산 시장보다 주식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1989년 12월 3만8915로 정점을 찍은 주가는 금리인상이 본격화하면서 1990년 10월 2만 선이 깨진다.

끝없이 치솟던 땅값도 인상 탓에 조정기를 거쳐 하락세로 돌아선다. 당시 미에노 야스시 일본은행 총재는 ‘서민을 위해 거품이라는 악을 퇴치하는 의적’, ‘버블 퇴치사’라는 칭송을 받는다. 그는 1994년 12월까지 재임하면서 부동산과 주식가격을 급락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에 너무 소극적이었다. 그는 일본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본경제를 망친 주범’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일본은행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90년 6%였던 기준금리를 93년 1.75%까지 다시 낮추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너무 천천히 금리를 낮췄다는 비판이 나온다. 2002년 미국 연준의 경제학자들은 보고서를 통해 “1989년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만 공격적으로 더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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