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대상에 따라 관찰 방법을 바꾸는 나노광학현미경 개발
근접장 편광제어·적외선 신호 검출로 다양한 분석 가능
카멜레온처럼 관찰 대상에 따라 관찰 방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광학 분석 기술이 개발됐다. 특정 방향으로 굽혀진 분자만 골라 관찰하거나 모드를 바꿔 다양한 물질의 광 신호를 검출할 수 있다. 생물학적 바이러스, 화학적 단일분자, 반도체 입자와 같이 종류가 다른 초미세 입자의 특성을 하나의 현미경으로 분석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박경덕 교수팀은 적응광학 기술을 탐침증강 나노현미경에 접목한 새로운 광학분석 기술을 개발했다고 17일 밝혔다.
탐침증강 나노현미경은 뾰족한 탐침으로 시료를 훑어 형태 정보를 알아내는 동시에 탐침에 모인 빛을 시료에 쏴 시료의 광 특성도 분석할 수 있는 자체 개발 장비다. 기존 탐침증강 나노현미경은 탐침에서 시료로 전달되는 빛의 편광을 조절할 수 없었는데 적응광학 기술을 접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적응광학은 빛의 파면을 조절해 산란 등에 의한 파면왜곡을 상쇄하는 기술이다.
탐침증강 나노현미경의 금 탐침은 외부 레이저빔을 모으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탐침 끝에 모인 빛(근접장)을 시료에 쪼여 여러 광학적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 시료마다 빛과 반응하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탐침으로 형태 정보도 읽어낼 수 있어 프리온처럼 굽혀진 단백질의 3차원 모양과 단백질의 화학결합 변화를 동시에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탐침증강 나노현미경은 금 탐침 표면에 수직 방향으로만 빛의 편광(방향성)이 고정돼 편광 제어가 불가능한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분자의 정렬방향(배향)을 골라 관찰하기 어려웠다. 똑같은 분자라도 눕거나 서있는 방향에 따라 화학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연구팀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적용해 맞춤형 레이저빔을 만드는 적응광학 방식을 접목해 문제를 해결했다. 탐침에 쏘아주는 레이저빔의 파면이 고정된 기존 기술과 달리 탐침 모양에 맞춰 파면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로 15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분해능으로 편광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 할 수 있었으며, 배향이 서로 다른 단일분자를 구분해서 측정함으로써 기술을 검증했다.
레이저빔으로 가시광선 대역 빛을 씀에도 불구하고 적외선 흡수분광 신호를 얻을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장점이다. 전자기장의 기울기가 매우 작은 공간에서 급격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이를 응용하면 개발한 장비 하나로 가시광선을 이용한 라만분광 신호와 적외선 흡수분광 신호를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얻을 수 있다. 고가의 적외선 레이저와 탐지기 없이 가시광선 나노현미경으로 매우 다양한 종류의 미세 입자를 연구할 수 있다.
박경덕 교수는 “적응광학, 근접장광학, 계산영상학을 결합해 새로운 융합형 나노현미경 모델을 제시한 연구”라며 “독립적으로 연구되던 적응광학과 근접장 광학을 최초로 접목한 이번 연구로 근접장 광학분야에 적응광학을 도입하는 시도가 활발해 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적응광학 기술로 탐침에 모이는 레이저 빔의 효율을 높여 검출 신호도 200% 이상 높일 수 있었다. 약 10나노미터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빛은 그 세기가 워낙 작기 때문에 나노현미경에서는 검출 신호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박 교수는 “망원경의 개발이 천체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어져왔듯 새로운 측정장비의 개발은 새로운 연구 분야의 개척으로 이어진다”며 “이번에 개발한 장비를 코로나 바이러스나 단백질 같은 생체분자 연구에 활용하고 싶다”라며 의생명과학자들과의 후속 연구 의지를 보였다.
한편, 연구에 사용된 시료의 제작에는 한양대 정문석 교수팀이 참여했으며, UNIST 물리학과의 구연정, 강민구 대학원생과 최진성 학부생이 개발 및 측정 연구를 함께 수행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쳐 커뮤니케니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6월 8일자로 출판됐으며, 적응형 탐침증강 나노현미경에 관한 원천기술은 국내 및 유럽 특허(PCT)로 출원됐다.
/울산=장지승 기자 j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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