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로비가 무대, 환자가 관객… 우린 음악 치료사
16일 오후 경남 창원시 사림동 창원한마음병원. 병원 1층 로비에 로시니의 오페라 ‘빌헬름 텔’ 서곡이 울려 퍼졌다. 검은색 연주복을 입은 20~30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 손끝에 따라 한 몸처럼 움직였다. 파트별로 비장애인 음악교사들이 섞여 있었지만, 단원 대부분은 20~30대 발달 장애인이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에 이어,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가 이어졌다. 흥겨운 트로트 선율에 단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휠체어를 탄 환자, 흰 가운을 입은 의사, 백신 접종을 기다리던 시민…. 하나둘 모여든 관객으로 병원 로비는 작은 콘서트홀이 됐다. 다리를 다쳐 보름째 입원 중인 윤종백(70)씨는 “생각지도 않은 음악 선물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참 대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1시간 공연을 마친 뒤, 발달 장애인 단원들은 “해냈다”며 서로 마주 보고 박수를 쳤다.
이날 연주회 제목은 ‘행복한 콘서트’. 50여명의 단원은 지난 4월 말 창단한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 소속이다. 이날이 5번째 공연이다. 장애인들이 다양한 사회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는 단체인 ‘희망이룸’에서 함께 연주 활동을 하던 단원 20명이 최근 이 병원에 ‘장애 예술인’ 정직원으로 채용되면서 오케스트라를 꾸렸다. 30여명은 객원 단원으로 공연에 참가했다.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는 수요일 점심시간에 병원 로비에서 공연한다.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이다. 공연이 없는 날엔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합주 연습을 한다. 병원 정직원인 단원은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하며 100만원가량 월급을 받는다. 복지 혜택도 기존 병원 직원들과 똑같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솔직히 직장과 직업을 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장애인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일자리를 주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발달 장애와 오른쪽 청각 장애가 있는 김지윤(23)씨는 이날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그는 “첫 월급을 받고 바로 저금했다”며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기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각 장애를 딛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객원 단원 허승우(18)군의 어머니 김영미(46)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가 ‘나도 할 수 있다’ ‘열심히 해서 직업을 갖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 병원은 장애인을 채용하기 위해 진료직·간호직·원무직 등 기존 직무에 ‘장애 예술인’ 직무를 추가했다. 하충식 창원한마음병원 이사장은 “의사로서 평소 장애인의 꿈과 희망, 일자리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며 “악기를 연주하며 정서적 안정을 찾고 스스로를 치유하던 장애인들이 음악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 예술인들이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단원을 채용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10명 이상 장애인을 한 번에 정규직으로 직고용해 오케스트라 형태로 운영하는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라고 말했다. 음악치료사인 정지선 희망이룸 대표는 “장애인들이 연주를 통해 자활하면서 당당한 음악인,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날 공연장 앞에 세워진 안내 현수막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장애가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여러분과 함께라면 우리는 끝없는 희망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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