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탈원전, 국부를 흩뜨리는 일
반세기 공들인 기술력 무너질 우려
후쿠시마 사고 영향 속단 일러
美 원전 절반 이상 40년 넘게 사용
현 정부 출범 한 달 후인 2017년 6월, 부산 기장군에서는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있었다.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를 강조한 신임 대통령과 더불어 국민의 큰 기대 속에 출범한 정부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한 대통령이 그간 운영되던 발전소 하나를 폐쇄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사실 의외였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脫核)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고, 그 후 탈원전은 이 정부를 상징하는 정책이 되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에 발전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이다. 가장 오래된 시설인 만큼 크고 작은 사고가 제일 많았던 것은 당연하다. 이를 정확히 40년 사용하고 폐기한 것이다. 이어서 약 7000억 원을 들여 대대적 보수를 마치고 2022년까지 운영할 계획이었던 월성 1호기 역시 2019년에 영구정지되었다. 이 과정에 대해 감사원은 장관을 포함한 고위 관료들의 경제성 조작 의혹을 제기한 바 있지만, 결국 흐지부지 끝낼 모양이다. 여하튼 정부는 앞으로 2034년까지 설계수명을 다하는 11기의 원전을 추가 폐쇄한다고 밝혔다.
원전과 같은 기계장치의 설계수명이란 무엇일까? 자동차는 5년 만에 폐차시켜야 할 때도 있지만 잘 관리하면 20년이 지나도 멀쩡하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설계수명이 30∼40년 이내라고 안전 가동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점을 계속 해결하고 수리하며 사용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설계수명에 이르면 전체적인 점검과 그에 따른 대대적 보수가 필수적이다. 즉, 기계장치는 유효기간이 지나면 완전히 버려야 하는 식품류와 전혀 다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전체 100기에 가까운 원전 중 절반이 현재 40년 넘게 가동 중이며 그 대부분은 이미 60년 운영을 허가받았다. 그리고 최근 그중 6기에 대해 추가로 20년 연장을 허가했으니 원전 80년 가동은 이미 실현되고 있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원전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고, 방사능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나 암 환자 발생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탈원전 정책의 기반이 된 상황 인식일 것이다. 여기서 1368명은 ‘도쿄신문’이 과학과는 거리가 먼 방법으로 자체 조사해서 당시 보도한 내용인데, 이는 일본 국내 및 국외 어느 곳에서도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항의도 받았다.
그리고 유엔 방사능 영향에 관한 과학위원회(UNSCEAR)는 지난 10년간 후쿠시마 지역을 모니터링했는데, 최근의 보고서에서 방사능에 의한 암 환자 증가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며 향후에도 그 가능성은 낮다고 확인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상황이 진실이라면 이는 일본 정부와 유엔 위원회 등 모두가 세계를 속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만약 정부의 초기 상황 인식이 잘못된 사실에 기초했다면 탈원전정책은 당연히 수정되어야 한다. 지난달 있었던 한미 두 나라 정상의 원전사업 협력 선언이 그런 정책 변화의 시작이길 기대한다.
위험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기술이 있기에 삶은 풍요롭다. 고속열차나 항공기도 위험하지만 우리는 안전을 최대한 모색하는 관련 기술을 신뢰하고 있다. 핵분열도 위험하다. 그러나 원전은 핵분열을 안전하게 다스리는 정치(精緻)한 기술이며 우리는 이를 이용해 국부를 쌓고 있다. 확실한 대체에너지 기술이 없는 현실에서 탈원전은 결국 국부를 흩뜨리는 일이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더니 지금 딱 그 형국인 듯싶다. 원전은 지난 반세기 우리가 공들여 쌓은 자랑스러운 탑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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