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대교협이 국민의 세금을 요구한다
[경향신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대학가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이익단체다. 4년제 대학의 총장들만 회원이 될 수 있는 대교협은 매년 1000억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국고보조’)으로 운영된다. 충원 위기로 전국의 대학들이 ‘곧 쓰러진다’ ‘다 죽는다’ 아우성이지만 대교협은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대교협 이사회는 지난 3월, 5월에 각각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그럴 만한(?) 것이 2020년 대교협의 수입은 1416억원에 순이익이 7억7000만원이었다. 대입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대학정보를 모아 공시하고 대학입시 박람회를 여는 등의 국가적(?) 사무를 대행하면서 생긴 수입이다. 또 대학정책에 관련된 총장들의 목소리를 모아 높이고 교원을 지원하고 직무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일도 한다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17년차 교수인 나도 대교협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고, 한번도 대교협이 교원들을 위해 벌인다는 사업의 혜택을 받아본 적 없다. 대교협이 수많은 비정년·비정규직 교수나 장래에 교수·연구자가 되기를 위해 희망하는 대학원생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풍문도 들은 적 없다. 대신 반대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대교협이 강사법 제정 같은 사안에서는 물론 주로 ‘주요’ 대학과 그 교수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정책을 만들고 압력을 행사한다는. 어느 교육계 선배는 재계의 경총이나 전경련 같은 조직이 대교협이라 생각하면 쉬울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뉴스를 보면 실제로 교육부 장관과 관료들은 수시로 대교협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친하게 지내는 듯하다. 그러면서 장관이나 관료들은 항상 ‘양쪽의 목소리나 다 잘 듣겠다’고 한다. 아마 ‘양쪽’ 중 하나는 이렇게 힘있는 회원들의 부자 관변조직을, 다른 쪽은 비정규직교수노조나 대학원생노조 등과 같은 데를 이르는 것 같다. 비위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자존심 외에는 가진 것 없어 근근이 조직을 유지하는 단체들 말이다. 세상에서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나는 알지 못한다. 또 ‘양쪽’이면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어디에 있나? 요컨대 이제 대교협 같은 조직이 대학(구성원)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교협 관련법의 전면 개정이나 해체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난 10일 대교협이 정부의 대학혁신지원 사업비를 2조원 이상으로 늘려달라고 했다.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폐지 등으로 대학에 돈이 없다면서 다른 지원도 요구했다. 적절한 이유며 방법인가?
고등교육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보다 고등교육에 세금을 덜 쓴다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그야말로 절박한 재정위기 상황에 있는 대학들이 여럿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요구에 시민들은 대체로 냉담하다. 실제로는 엄청난 부자들인 교주와 사학재단(일부는 분명 그렇다)이 운영하는 대학에 국고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리 있다. 또 일부 사학처럼 부패·무능하지 않아도, 현재와 같은 모순과 잘못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결국 대학 기득권 체제를 유지·보존하는 일이 될 거라는 우려가 있다. 이 점이 특히 중요해 보인다. 국민의 세금은 ‘대학의 위기’를 대충 막는 데가 아니라 진정한 개혁을 위해 쓰여야 한다. 대학에 대한 재정 투입이 대학체제의 온전한 개혁과 상호작용하는 수단이 되도록 계획을 짜고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학체제 개혁이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평등 계층·고용·지역의 구조에 뒤엉킨 대학서열과 대학의 지배·소유 구조 등을 고쳐 대학이 이 사회와 시민의 삶을 위해 진짜 기여하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이 지금보다 10배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데가 되어야 하고, 대학 내부의 차별과 착취부터 근절되어야 한다. 교수 직제와 임금 구조의 개혁과 더불어 정년계열 교수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도 필요하다.
충원율 위기 때문에 올해 봄부터 폭발한 대학개혁 담론의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제각기 한마디씩 하지만 쥐라기 말기의 공룡처럼 늙고 거대한 대학체제의 현실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데를 더듬거나, 사학재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결국 현 체제를 유지하여 이득을 보자는 소리부터 가려내야겠다. 또 마치 대학이 ‘스카이’나 몇몇 인서울 대학 외에 없는 듯 말하는 엘리트주의와 ‘경쟁력’ ‘수월성’ 같은 상투적인 패러다임이 시민과 미래 세대를 위한 질 높고 고른 고등교육을 위한 개혁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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