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 진정한 평가란
[경향신문]
지난 교직생활을 돌아볼 때, 실제로 느껴지는 학교의 변화는 30년 동안 학급당 학생수가 30명 줄었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체벌이 없어졌으며, 교복·교과서·급식·학비 등 전국적으로 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학교의 확산으로 교사의 강의 중심 수업에서 학생 참여 중심 수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화의 흐름이다. 앞으로 더 변화들이 일어나겠지만, 제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가 여기까지 오는 데 3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대로 평가는 가장 변화가 느린 영역이다. ‘성장 중심 평가’라는 말이 교육청 계획서에 실려 매년 초 학교로 내려오지만 일선학교에서는 평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한 인간의 성장과 변화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그만큼 깊고 면밀한 영역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교육의 변화는 아마도 평가 방식의 변화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진정한 평가란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고, 어떤 도전 속에 있는지 함께 주의를 기울이고 기뻐하며, 응원하고 축하하는 자리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지식의 대상만을 좇느라, 교사와 학생의 내면의 영역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기 때문에 평가와 관련해서도 많은 점들이 여전히 추상적 개념 속에서 잠자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5단계 만족도 조사 이외에 서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일감을 주고 생산량을 체크하듯 학생들의 학습 성과를 평가하면서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이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생생함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지? 학생들이 갈수록 생생함을 잃어간다는 것을 알면서 그들에게 추상적인 지식을 계속 외우게 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상황이나 제도가 단단하게 얽혀 있어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 상황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다가 불평분자가 되거나 무관심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상황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또다시 멀어진다. 그러니 차라리 “좋아! 그렇다 치고, 그럼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뭐지?”라고 물어보는 건 어떨까? 이런 순간에 우리가 바라는 변화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생생해질 것이다.
등교수업 첫 시간에는 늘 학습지 평가를 한다. “얘들아, 진도보다는 내가 지난 수업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더 중요해서, 오늘은 지난주 온라인에서 공부한 학습지를 검사할 거야. 이번 시간에 다 못하더라도 한 사람씩 꼼꼼히 할 거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편안하게 준비해서 나오세요.” 그리고 질문 두 개를 칠판에 써준다. 지난주에 배운 중요 내용 설명하기, 그리고 거기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되거나 생각해보게 된 것 말하기.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닐 때 학생들의 말은 점점 추상적으로 흐른다. 반대로 이해하게 되면 학생들의 말은 점점 쉽고 생생해지며 목소리에는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그가 발견한 배움을 함께 축하한다. “와, 이걸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 거야?” 짧은 시간이라도 한 사람에게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평가의 경험은 학생들이 다음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를 준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일반화되려면 그동안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여러 가지 전제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야 한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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