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 피할 수 없다면.. 싸움은 이런 식이면 좋겠다
"늙었으니 물러나라" 대신 "내가 적임자" 주장 명쾌하고 신선했다
한국은 연령 차별이 심한 사회다. 많은 문제와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 일에 얽힌 사람들의 나이가 중대한 고려 요소가 된다. 흔히들 이걸 장유유서 문화라 설명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엄밀히 말해 한국 사회의 연령 차별은 나이 많은 사람이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50대 패권주의'에 가깝다.
상황과 업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가정에서든 기업에서든 50대, 그것도 남자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가끔 특출 난 40대가 그 사이에 끼는 경우도 있고 운 좋은 60대가 50대들의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든 기업에서든 70대 이상이 환영받거나 존중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물론 한 개인이 50대에 이르러 그의 인생에서 종합적으로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험과 경륜이 쌓인 데다 정신적으로 아직 순발력이 있고 육체적으로도 본격적인 노쇠를 겪고 있지는 않으니. 한국이 아닌 다른 선진국에서도 ‘5말 6초’ 정도가 조직의 지도층이나 주역이 되는 모습 자체는 흔하다.
그 사회들과 한국의 다른 점은, 50대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유지하는 방식에 있다. 한국의 ‘사회 지도층 세대’는 대개 나이에 힘입어 그 자리에 오른 뒤 다른 세대의 관점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다른 사회에서보다 세대 경계선을 둘러싼 긴장이 훨씬 더 강하게 조성된다.
사실 이 문제에서 특정 연령대나 세대를 얼마나 탓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기본적으로 이 나라에서는 세대 간 수평적인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그 필요성을 깨닫고 노력해도 아래 세대와 소통은 쉽지 않다. 젊은이들이 쓰는 축약어를 부지런히 익히려는 모습은 딱할 뿐. 한데 청년들은 반대편에서 늘 ‘싸가지’를 걱정한다.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위 세대가 종종 동원하는 언어는 다음과 같다. “어린 놈이 건방지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예의를 갖추라”. 아래 세대는 이렇게 응수한다. “꼰대” “아재” “후지다, 낡았다” 등등. 이 말들에는 ‘나 너랑 얘기하기 싫어’ 외에 아무 뜻도 없다. 상대의 논리나 실력이나 도덕성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런 언어들이 등장하면 대화는 끝난다. ‘당신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 ‘당신 구려요’라는 사람과 무슨 수로 토론을 하겠는가. 기실 논리나 실력이나 도덕성을 논하면 불리해지는 측일수록 대화를 피하는 용도로 그런 언어를 사용한다. 공론장에서 ‘낡았다’는 표현을 쓰는 자가 있으면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보통 이런 세대 간 긴장은 매우 한국적인 방법으로 해소된다. 대화나 토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 세대의 방식은 찍어 누르기다. 아래 세대의 방식 중 하나는 적당히 세력을 갖춘 뒤 위 세대를 따돌리는 것이다. ‘이제 그만 물러나시죠?’ 하고 눈치를 준다. 그 무언의 압력에 위 세대는 알아서 용퇴하거나 뒷방 늙은이가 된다. 시기를 놓치면 노추(老醜) 소리를 듣는다.
아래 세대가 세대교체론을 내세우며 위 세대의 퇴장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때도 있다. 나는 세대는 실체가 있는 개념이고 세대론도 사회 분석의 관점에서 유용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세대교체론에 수긍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중요한 자리를 내놓으라는 주장을 하려면 왜 자신이 거기에 적임자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생물학적 나이가 그 근거가 될 수 있나.
제1야당 지도부가 확 젊어졌다. 30대 당대표가 된 이준석이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우려스러운 구석도 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세상이 바뀌었고 당신들은 늙었으니 물러나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왜 적임인지 구체적으로 주장했다.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싸움은 이런 식이면 좋겠다.
이준석은 곤란한 질문에도 말 돌리지 않고 명쾌하게 답했다. 그게 신선했다. 성실하게 대화에 임한다는 느낌이었다. 한국 정치에 제대로 된 대화와 토론이 얼마나 부족한가. 언젠가부터 여론조사 수치만 믿고 모호한 소리를 해대며 ‘간 보기’ 정치를 하는 외부 인사가 많다. 그들은 국민과 대화를 피한다. 극성 팬덤은 ‘문자 폭탄’을 퍼부어 상대의 입을 막으려 한다. 눈물과 공분이 대화를 겁박한 적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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