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24] 보험사는 은행이 아니다
남이 아프다고 내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 폭풍우를 만나 배가 위험할 때 남의 물건을 내버릴수록 내 물건은 안전해진다.
난파의 위기 앞에서 그런 생각을 품고 남의 물건부터 집어던지면 싸움이 난다.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화물을 버린 뒤 나중에 사이좋게 손실을 분담하는 것이 슬기롭다. 그래서 해상보험에서는 손실액을 애버리지(average)라고 부른다.
배가 난파하면 손실액이 엄청나다. 그래서 해상 사고는 곧장 파산으로 이어진다.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청년 재벌 안토니오가 샤일록의 빚을 못 갚는 이유도 배가 난파됐기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을 낮추려면, 화물을 분산해서 실어야 했다. 영국이 스페인과 신대륙에서 싸울 때 네덜란드가 영국군에 은화를 보냈다. 배 한 척에 돈 궤짝 하나씩만 실어서 돈을 기다리던 영국군은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무역량이 늘면서 분산 수송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때 네덜란드가 해상보험을 발명했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전쟁할 때도 영국 상인들은 적국의 해상보험을 이용했다. 반면 영국은 런던 대화재를 계기로 화재보험의 종주국이 되었다. 생명보험은 인명을 도박한다는 윤리적 고민 때문에 마지막에 출현했다.
우리나라에는 거꾸로 도입되었다. 구한말 일본계 보험사들이 생명보험을 팔고, 해방 후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려고 화재보험이 확산되었다. 해상보험은 나중에 도입됐다. 일제강점기에 은행은 조선계가 많았지만, 보험사는 일본계가 많았다. 조선총독부는 생명보험이 은행 예금과 똑같다고 선전했고, 그래서 보험사와 은행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한국은행법을 만들 때 “보험사는 은행이 아니다”라는 교육용 문구를 담아야 할 정도였다.
오해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보험 시장은 이미 90년대부터 세계 6~7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들이 온갖 위험에 진저리가 났다는 말이다. 안전사고는 언제쯤 줄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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