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예술적'인 것과 '예술'의 차이
[경향신문]
3년도 못 가 급격한 하향 그래프를 그렸지만 2007년 미술시장은 그야말로 뜨겁고 에너지가 넘쳤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옥션과 아트페어가 분주히 열렸으며 대중들은 뭔가에 홀리듯 집 팔고 땅 팔아 너도나도 환금성 거의 없는 미술품에 투자한다고 나섰다.
14년 전 당시의 재림일까. 2021년 현재, 미술은 암호화폐와 주식 못지않게 자본의 자기 팽창을 실현해 주는 대표적인 고급 콘텐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부의 차별화를 포함한 심미적 포만감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도구로 자리 잡는 양태다.
미술시장은 상징재화인 미술이 물질재화로 교환되는 최적의 장소이면서 작품을 매개로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이윤을 이상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하는 최면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도 일반시장처럼 상품 거래를 위한 매도 및 매수자, 생산자가 필요하고, 생산자 역할을 맡는 건 작가이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오늘날 적지 않은 수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소비재로 평가받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장식에 불과한 상품을 만드는 기능인이라는 시선에도 아랑곳없다. 돈만 밝히는 유통업자들과 대중의 예술 편식을 옹호한 채 시장이 선사하는 달콤함에 취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기준에 저항할수록 예술의 자율성을 지켜낼 수 있다고 여기는 작가들도 많다. 미학적 성취와 실험의 성과에 집중하고 결여를 채우려 몸부림치는 욕망의 그림자를 경계하는 이들이다. 작품 내용 역시 부유층의 취미와 기호에 읍소하는 예술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인류 공통의 이슈를 지각과 감수성의 층위에서 창조적으로 담아낸다. 역사상 가장 견고한 신앙이자 치명적 권력인 자본주의에 무릎 꿇은 결과로 얻게 되는 예술의 허위성을 비판한다. 나아가 모든 식민주의에 대항하거나 투쟁함으로써 물질적·심리적 노예화와 착취를 일삼는 공인된 힘에 말할 수 있는 권리,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대변한다. 그들에겐 편협한 예술 취향에서 독립된 미적 민주화도 중요한 화두이다.
사실 익명의 시장 선택 체계에 종속된 작가나 자신의 예술이 공공의 삶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여기는 작가나 민생고라는 공통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점에선 하나로 묶인다. 다만 전자는 시작점이면서 종착지이고, 후자는 대부분 과정이라는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 현실의 고통을 떠맡기는 미안함과 공적자원의 충분한 지원이라는 과제를 상기하게 하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차이 뒤에 숨겨진 신념과 철학에서 ‘예술적인 것’과 ‘예술’ 간 간극이 발생한다. 쓰임이 상이한 결과물은 동시대 예술의 가치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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