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소년원 북콘서트를 마치고

서현숙, 교사·'소년을 읽다' 저자 2021. 6. 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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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서 독서 수업을 한 이야기를 담은 졸저 ‘소년을 읽다’를 낸 후 다양한 독자들을 만났다. 그 중 특히 A 소년원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다(소년원은 법무부 산하 특수목적 교육기관으로 일종의 ‘학교’다).

나는 A 소년원에서 주최하는 북콘서트에 초대받았다. 북콘서트는 소년원 내의 바리스타 교육장에서 열렸다.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교복을 반듯하게 차려 입었다. 조명도 음악도 멋졌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아이들은 책을 읽은 감상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고, 책에 인용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워 낭송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책에 소년원 아이들이 쓴 편지가 나오잖아요. 마치 제가 쓴 편지 같았어요” “이 책이 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해서 좋았어요. 저도 작가님의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어요.”

묘한 기분이었다. 다른 독자들과의 만남에서는 느낀 적 없는 낯선 감정이었다. 학생들이 ‘소년을 읽다’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여긴 까닭이었다. 내 책은 이곳에 여행 와서 ‘여기’의 이야기가 되었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학생들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시연(가명) 학생이 공책에 빼곡하게 쓴 글씨를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작가님, 독서 동아리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해보려고 책 구절을 이렇게 옮겨 적었어요”라며 내 눈을 바라보는데 마음 깊이 놀랐다. 활짝 열린 눈이었다. 나는 어떨 때,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 이렇게 눈을 활짝 열 수 있을까. 상대를 향한 경계도 가식도 없는 눈이었다.

사회는 청소년의 범죄를 여러 방법으로 지도하고 벌을 준다. 그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벌 자체가 목적일 리 없다. 돌아오면서 시연이를 생각했다. 나는 그가 살아온 삶의 맥락을 모르지만, 시연에게도 ‘이전’과 ‘너머’가 있다. 소년원에 오기 이전의 삶, 소년원에서 나가 어른으로 성장해 살아야 할 너머의 삶 말이다. 그날 밤, 활짝 열린 시연이의 눈이 커지고 커져서 내 가슴에 꽉 찬 채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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