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소년원 북콘서트를 마치고
소년원에서 독서 수업을 한 이야기를 담은 졸저 ‘소년을 읽다’를 낸 후 다양한 독자들을 만났다. 그 중 특히 A 소년원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다(소년원은 법무부 산하 특수목적 교육기관으로 일종의 ‘학교’다).
나는 A 소년원에서 주최하는 북콘서트에 초대받았다. 북콘서트는 소년원 내의 바리스타 교육장에서 열렸다.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교복을 반듯하게 차려 입었다. 조명도 음악도 멋졌다.
아이들은 책을 읽은 감상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고, 책에 인용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워 낭송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책에 소년원 아이들이 쓴 편지가 나오잖아요. 마치 제가 쓴 편지 같았어요” “이 책이 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해서 좋았어요. 저도 작가님의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어요.”
묘한 기분이었다. 다른 독자들과의 만남에서는 느낀 적 없는 낯선 감정이었다. 학생들이 ‘소년을 읽다’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여긴 까닭이었다. 내 책은 이곳에 여행 와서 ‘여기’의 이야기가 되었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학생들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시연(가명) 학생이 공책에 빼곡하게 쓴 글씨를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작가님, 독서 동아리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해보려고 책 구절을 이렇게 옮겨 적었어요”라며 내 눈을 바라보는데 마음 깊이 놀랐다. 활짝 열린 눈이었다. 나는 어떨 때,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 이렇게 눈을 활짝 열 수 있을까. 상대를 향한 경계도 가식도 없는 눈이었다.
사회는 청소년의 범죄를 여러 방법으로 지도하고 벌을 준다. 그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벌 자체가 목적일 리 없다. 돌아오면서 시연이를 생각했다. 나는 그가 살아온 삶의 맥락을 모르지만, 시연에게도 ‘이전’과 ‘너머’가 있다. 소년원에 오기 이전의 삶, 소년원에서 나가 어른으로 성장해 살아야 할 너머의 삶 말이다. 그날 밤, 활짝 열린 시연이의 눈이 커지고 커져서 내 가슴에 꽉 찬 채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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