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배틀 정치
[경향신문]
<미스터 초밥왕>은 1990년대 요리 만화 전성기를 이끈 일본 만화다. 16세 시골 초밥집 아들이 상경해 역경을 딛고 전국대회 우승을 향해 가는 성장 드라마다. 10년 넘게 잡지에 연재됐고 1·2부 합쳐 44권의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일본에서 1400만부, 한국에서 250만부 이상 팔렸다.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초밥 요리 ‘배틀’(대결)이 이어진 게 흥행 비결이다. 주인공 쇼타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라이벌들을 차례로 물리치며 일취월장한다. 갈수록 강한 상대가 나와 늘 불리하지만, 주인공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배틀로얄’은 셋 이상이 링에 올라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프로레슬링 경기 용어다. 요즘에는 게임의 한 장르로 통한다. 방탄소년단이 신곡을 발표한 메타버스 게임 공간이 ‘포트나이트 : 배틀로얄’이다. ‘왕의 싸움’을 뜻하는 이 말은 고대 로마제국의 ‘서바이벌’ 검투 경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격투기를 가리켰던 말이 엔터테인먼트·게임 등 분야로 퍼졌다. 근래에 배틀이라 하면, 래퍼들이 일대일로 실력을 겨루는 랩 배틀이 원조다.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대결 구도는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TV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미 이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서바이벌 오디션이다. 노래·랩·춤·요리는 물론이고 다이어트에 여행까지도, 걸핏하면 일대일 대결이다.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 K>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101> 등이 대표 사례인데 지금도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 개중에는 시청자들이 식상해할까봐 강한 자극만 추가한다. 배틀 프로그램이 한때 유행에 그치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군대 특수부대 중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리는 대결까지 TV에 나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 대변인을 서바이벌 토론 배틀로 뽑겠다고 한다. ‘출전’ 자격에 별 제한이 없다 하니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16강·8강 토너먼트, 4강 리그전을 공개 행사로 펼친다니 흥행 요소도 충분하다. 다만 서바이벌 오디션 방식이 진짜 인재를 뽑는 것인지, 예능성 이벤트인지는 더 따져보면 좋겠다. 자칫 잘못하면 ‘겉보기 능력자’가 1등이 될 수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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